조엘 마이어로위츠 Joel Meyerowitz 열화당 사진문고 26
콜린 웨스터벡 지음, 신가현 옮김, 조엘 마이어로위츠 사진 / 열화당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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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마이어로위츠>-조엘 마이어로위츠

 

작년 연말에, 나는 어느 분한테서 한권의 책을 선물로 받았다. 그 책의 제목은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이다. 평소에 시를 읽지 않는 나에게 이 책은 여간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책의 분량도 생각보다 많아서, ‘그냥 한쪽 구석에 치워둘까?’ 라는 생각이 맨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선물로 받은 거니까, 읽어나 보자’라는 마음을 먹으면서, 한 페이지 씩 읽어 나갔다.

 

첫 장의 주제는 ‘시란 무엇인가?’ 이다. 이 저자는 시는 ‘상징’ 과 ‘비유’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즉 시인이 어떤 것을 바라보면서 받았던 생각 및 느낌 등을 단어들로 표현한 것이 ‘상징’이고, 시인이 받았던 감정 및 생각을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비유’라는 것이다.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시인은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시각으로 본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독자는 ‘시’를 통해서 시인의 시각으로 본(독자가 생각해보지 못한 것) 것들을 볼 수가 있으며,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 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의 모습은 ‘사진’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한 장의 사진에는 사진 작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즉 사진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시인이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비유’와 ‘상징’라는 도구를 써서 목소리를 내듯이, 사진 작가도 피사체들을 이용하면서 ‘비유’와 ‘상징’라는 도구를 써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를 읽은 독자처럼, 사진을 본 사람도 ‘작가의 시각으로 본 세상’을 보고, 깨닫고, 생각을 다시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받는 것이다.

 

이번에 본 사진집은 조엘 마이어로위츠의 사진집이다. 이 사진 작가의 사진은 ‘비유’와 ‘상징’이 잘 표현이 되어있다. 우선 조엘 마이어로위츠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 그다음에 그가 찍은 작품을 살펴 볼 것이다. 조엘 마이어로위츠(1938-)는 로버트 프랭크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전통을 이어받아, 뉴욕의 거리에서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찍었다. 우연히 벌어지는 사건들을 포착한 그의 사진은 삶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유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주제를 컬러 사진에 담아냈는데, 건축과 빛, 공간과 같은 주제를 유려한 색채감각으로 표현하여 이 분야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서정적이고 섬세한 색채를 띠는 그의 컬러 사진들은, 과거 상업적 성향의 한계를 뛰어넘어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입증해 냈다.

 

다음으로는 그의 사진들 중에서 인상적인 몇 장을 추려서 보도록 하겠다.

p55

스페인, 1966. 한 노인이 놀고 있는 아이들을 지쳐보고 있다.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난 듯한 젊은 청년은 앞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있다. 어른들의 세계를 기대했지만 실망이라도 한 듯,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걷고 있다.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건들도 함께 모이면 새로운 의미, 신선한 견해를 만들어낸다.

p70

터키,1967. 삶은 우리에게 애정이 가득한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손을 씻을 수 있도록,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을 따르고 있었다. 이 아이는 예의를 갖추고 주의를 집중하기 위해서 몸을 한껏 굽히지만, 노인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이의 대접을 받고 있다. 한편, 사진의 왼편으로 카메라를 목에 건 사내가 걸어가고 있다. 그도 나처럼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이 사진을 찍었지만 그 남자는 못 찍었다는 것이다.

p86

뉴욕,1968. 추측하건대 이 두 남녀는 장난을 치는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환하게 웃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인에게 간청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청혼을 하는 것일까.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부탁을 거절하는 몸짓을 취한다. 두 사람 모두 젊고 명랑하다. 이 장면에서 심각해 보이는 유일한 사람은 그들 곁을 지나가는 행인이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이 노인은 결혼이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p92

대초원, 1971. 구부정한 어깨, 공허함, 고독감, 해질 무렵의 음산한 날씨. 나에게 이 사진은 불안한 시기의 미국인을 표상한다. 국가는 국민의 동의를 언지 못한 전쟁이라는 수렁 속에 빠졌지만, 계속 밀고 나갔다. 누군가가 “당신의 낡은 자동차는 잘 갑니까”라고 묻자, 차가 폐차 직전의 고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네, 잘 갑니다”라고 대답하듯이 말이다.

 

 

우연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 이 사진작가의 특징이다. 이와 반대로 지금 나의 사진은 목소리가 없다. 개그맨들의 개인기로써 ‘성대모사’를 하듯이, 나의 사진도 ‘나만의 목소리’가 없다. 아~아~ 나만의 시각과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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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예언 세트 - 전2권 루나의 예언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강만원 옮김 / 창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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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예언 1,2-프레데릭 르누아르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이다. 이 책은 오르한 파묵이 하버드대학에서 강연한 것을 정리한 것으로, 저자(오르한 파묵)가 생각하는 소설 속 플롯, 인물, 배경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설정 하는가에서 부터 소설 독자로써 한번쯤 궁금했을 ‘당신은 진짜 이와 같은 것들을 경험했나요?, 소설의 주인공은 개성적이고, 독특해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포괄한 책이다. (소설에 대해서 관심 있고,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읽어 보시면 유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을 보면서 눈에 띄는 부분은 ‘소설의 가치’를 말하는 부분이다.

 

P11

내게 소설의 가치는 우리로 하여금 소박하게 세계에 투사 할 수 있는 중심부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힘에 있습니다. 더 간단하게 말해, 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에게 삶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느낌을 얼마나 이끌어 내느냐에 따라 평가되어야 합니다. 소설은 삶에 관한 우리의 중심 사상에 호소해야 하고, 그러한 기대 아래 읽혀야 합니다.

 

즉, 소설의 가치는 소설의 중심부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힘 이면서, 이것이 우리의 실제 삶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가는 소설의 중심부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아서, 독자들은 끊임없이 소설 속 배경, 인물, 단어 등을 통해서 그 중심부로 한 걸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르한 파묵에게 ‘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중심부가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는 원동력이며, 이런 행동으로 인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는 것이다. 그 중심부는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독자마다 다르게 보일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하여 자신들의 삶에 다양하게 영향을 줄 것이다.

 

이번에 읽은 <루나의 예언>은 다양한 소재들로 구성 되어 있다. 몇 가지 단어로 추리면, 기독교, 예수, 자유의지, 운명, 철학, 여자, 사랑 등이다. 소설에서는 이 7가지 단어를 적절하게 버무렸다는 것이다. 그 만큼 ‘소설의 중심부’를 무엇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르한 파묵의 ‘소설의 가치’에 의거해서 중심부가 무엇인지를 찬찬히 고민을 했다. 즉, 이 소설의 중심부가 무엇이고, 그리고 나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 라는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루나의 예언>의 중심부를 찾아 나섰다.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중심부는 ‘인간이 자유의지와 운명이라는 족쇄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이 자유의지와 운명은 서로 대립 관계의 단어들이다. 자유의지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외적인 강제ㆍ지배ㆍ구속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말한다. 그리고 운명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결정을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자유롭게 삶을 개척하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삶의 길을 이미 정해져 있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유의지’와 ‘운명’이라는 놈을 가졌다 라는 의미는 ‘인간은 주체적인 동시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유의지’와 ‘운명’이라는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의 모습을 ‘조반니’라는 남자 주인공으로 보여 주고 있다. 조반니가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아는 것이 ‘독자의 삶’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운명과 자유의지를 어떻게 가지고 사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제2권, P169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분명 해졌어.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중략)

“그래, 우리는 삶에 열심이지. 그러나 그것에 매달릴 뿐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어. 존재에 집착하는 것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야. 요컨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산다는 것은 예술이지.”

조반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묵었다.

“무슨 뜻 입니까?”

“아주 간단해, 하나님은 의견을 묻지 않고 우리를 창조하셨지. 즉, 우리에게 ‘존재’를 준 것이고, 그의 뜻에 따라 우리는 존재하게 되었어.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우리는 그에 대해 부정할 수 없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을 주셨다면 이제 우리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바로 거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지. 우리는 각각의 삶에 도구가 아니라 작가가 되도록 부름 받은 것이야. 예술 작품처럼, 우리는 무엇보다 삶을 먼저 갈망해야 해. 그리고 삶을 상상하고 깊이 생각해야 하지. 마침내 삶을 깨닫고, 다듬고, 조각해야 하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모든 사건들, 다시 말해 삶의 행복하거나 불행한 모든 단편들을 통해 이루어져. 철학을 배우거나 요리를 배우는 것처럼, 우리는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해. 삶의 가장 훌륭한 교사는 삶 자체이며, 삶을 통해 우리가 겪는 수많은 경험들이 진정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지.”

 

 

이 책은 두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에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을 주신 것은 운명이지만, 삶을 작가처럼 사는 것은 자유의지 라고 말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만을 선택하는 것이고,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산다는 것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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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꽃 - 고은 작은 시편
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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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꽃- 고은

 

<나에게 '시'는 인간다움을 주었다.>

오늘 아침 기온(2013/1/10)은 영하 12℃ 였습니다. 계절이 겨울이라서 추운 것은 이해가가지만, 추워도 너무나 추웠습니다. 군대에서는 이보다 더 추운 ‘혹한기 훈련’을 받았는데도, 저는 이번 추위에 적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정말이지 너무나 추운 날씨 였습니다.

 

예전에 저는 겨울철 아침에 기상할 때, 이성과 감성이 서로 싸웠던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이성은 ‘지금 빨리 일어나야 해, 이러다가 늦는다고.’라면서 제 육신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고, 감성은 ‘방바닥은 따뜻하고, 이불도 따스한 온기를 간직한 이때, 꼭 일어나야 겠니?. 조금만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나.’라면서 제 육신을 이불 속으로 웅크리게 만들었습니다. 매번 이들 간의 싸움에서 이긴 것은 감성이 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저는 아침밥도 못 먹고, 출근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날 때도 이들이 서로 싸우는데, 이기는 것은 ‘이성’ 입니다. 아침에 핸드폰 알람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 저는 곧바로 이불을 한쪽으로 치웁니다.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어오죠. 그리고 현관문 밖에 놓여있는 일간신문을 가지러 가는 동안 조금씩 정신을 차리다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온몸으로 차가운 공기를 느끼면서 정신을 차립니다. 이렇게 정신을 차린 다음,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방에 들어가서 오늘 하루 필요한 책들 몇 권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삶은 고구마를 챙기고 집밖으로 나옵니다.

 

아침마다 서둘러 가는 곳은 ‘집 앞 독서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 방학동안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으려고 매일매일 서둘러 그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독서실에 도착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일간 신문’을 읽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는데 대략 30-40분 정도 걸립니다. 이번에 신문을 보면서 눈에 들어온 기사는 ‘신입사원 채용규모를 축소한다는 기사’이다. 이 기사를 보고 “아~아~아~ ”라고 신음 소리를 내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책상 위에 놓은 자격증 책을 바라보면서, ‘지금 공부하는 것이 지금 같은 취업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그 신문을 다 읽고, 원 상태로 덮은 다음, 1/4 크기로 접었습니다.

 

그 이후 자격증 책을 펼치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 자격증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이야.’ 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신문기사를 잊으려고 애섰습니다. 뚫어져라 책을 보았고, 출출하다 라고 느껴지면 삶은 고구마를 입안에 넣으면서 계속해서 책을 보았습니다.

 

이런 식의 생활 패턴(집→독서실→집)은 방학을 시작하면서 계속 했고, 점점 나의 삶이 단순화되고, 기계로 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우리 안에 사육당하는 돼지처럼, 나 자신도 독서실이라는 울타리 안에 놓여 있으며 꾸역꾸역 글자들만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맛 이고, 어떠한 향기를 품고 있는지를 음미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먹는 것’ 듯이 게걸스럽게 책을 먹어 치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 제 자신을 위해서, 저는 얇은 시집을 꺼내어 읽었습니다. 사막해지고, 여유가 없었던 저에게 시들은 많은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부하고 있을 취·준·생 여러분에게도 이 시들을 전하고 싶습니다.

 

 

p11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서 있는 하루

 

오늘도 이 세상의 그런 하루였단다 숙아

 

p13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 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p24

소나기 맞는 민들레

입 오므리고 견디는구나

 

굳세어라 금순아

 

p53

친구를 가져보아라

적을 안다

적을 가져보아라

친구를 안다

 

이 무슨 장난인가

 

p58

한번 더 살고 싶을 때가 왜 없겠는가

죽은 붕어의 뜬 눈

 

p65

책을 미워한다

책 읽는 놈들을 미워한다

이런 놈들로

정신이 죽어버렸다

 

밥그릇들 포개어진 식당같이 빈 돼지우리같이

 

p86

나는 고향에서

고국에서

아주 멀리 떠난 사람을 존경한다.

 

혼자서 시조(始祖)가 되는 삶만이

다른 삶을 모방하지 않는다.

 

스무 살 고주몽

 

p95

재가 되어서야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하더이다

10년 내내

제 불운은 재가 되어분 적 없음이더이다.

늦가을 낙엽 한 무더기 태우며 울고 싶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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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원재 지음 / 어크로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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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원재

 

지금 나는 정상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는가? 이 책의 저자는 나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이상한 세계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세계’라는 비교 대상을 먼저 설정해야 한다. 이때가 중요하다. 즉 ‘정상적인 나라’를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하는가 이다. 그동안 살아오면 직·간접적으로 배워온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소수 인사 및 언론을 통해서 만들어진 지금의 사회)라고 간주해야 하는가? 아니면 소수의 사람들을 먼저 도와 준 다음, 나중에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정상적인가? 협동보다는 경쟁을 강조해서 능력위주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 인가?.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속한 계층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도 다르다.

 

이 책의 저자에게 ‘정상적인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 간에 ‘이타심’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사회’는 ‘오늘날 경제에서 지나치게 이기심만을 강조하는 사회’이다.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우리는 사회 및 가정에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그에 따른 실천들을 했다. 겨울철 길거리를 지나 다니면서 발견한 빨간색으로 칠해진 불우 이웃 돕기 모금함에 어느 정도 돈을 넣는다. 그로인해서 마음의 만족감을 얻는다. 또는 대중교통시설을 이용할 때, 임산부 및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사회적 관습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행동을 실천하지 않을시, 주위로 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다. 즉 우리는 타인들을 대할 때, (교육에 의해서든, 인간의 본성에 의해서든) 이타적 사고와 이타적 행동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경제학 관련 문제를 대할 때는 이런 이타심을 없애고, ‘이기심’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것만이 최우선이라고 여겨지고, 주위 사람들 또한 이를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여기고 있다.

 

경제학에서 강조하는 ‘이기심’을 통해서 추구하는 것은 타자(사람)가 아니라 ‘돈’이다. 기업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람(직원)이 아니라 회사실적이 작년보다 얼마나 증가했느냐이다. 만일 작년보다 이익의 규모가 줄어들면, 먼저 직원부터 자른다. 인건비를 줄이므로써, 회사의 이익규모를 유지 및 증가하려 한다. 그리고 자신들(소수의 사람들, 기업가)의 부가 유지 및 더 많이 쌓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성을 만들고, 그 성 안에서만 부가 흐르도록 한다. 그 안에는 들어가는 사람은 소위 대한민국 2000대 기업(2000대 기업 안에 들어가는 기업은 대기업 및 제1차 협력업체임.) 안에 정규직으로 종사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성 밖의 사람들과 비교해서 부의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성 밖의 사람들은 다르다. 이들에게 울타리가 없고, 맨몸으로 알아서 생존하라고 주문을 받고 있다. 책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더 자세히 알 수가 있다.

 

 p44

한국 경제는 두 개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성벽이 세워져 있다.

 

하나는 수출 대기업 및 이들을 보조하는 1차 협력업제, 금융권, 컨설팅등의 서비스, 공공부문의 ‘성벽 안 경제’이다. 이 네트워크에 정규직으로 고용되면 그나마 안정적인 고임금을 50대 초반까지 유지 할수 있다. 대치로 1인당 국민 소득 이상의 수입을 얻고 있으며, 그 만큼의 생산성을 내고 있는 부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 나머지인 ‘성벽 바깥경제’디. 20 초 중반에 성벽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하다가 패배한 사람들이여기 속한다. 또 성벽 안에 안주하지 않으려 스스로 사업을 일으키기로 결심한 기업가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 50대 중반 이후 인구의 대부분은 여기 속하게 된다. 20-40대에 ‘성벽 안’에 있던 사람들도 50대 이후에는 자영업과 비정규직 등 수입과 고용안정성 둘 다 떨어지는 방향으로 직장을 옮기게 된다. 여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을 얻으며, 늘 생산성이 낮다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성벽 안 경제는 글로벌 경제다. 식량을 얻기 위해 전 세계를 사냥하는 기업들의 세계다. 이긴 쪽은 전리품을 얻지만 진 쪽은 피를 흘린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신제품을 개발하고 비용을 절감하고 영업일선에서 뛰어다닌다. 탐욕은 이 시스템의 동력이다. 그래도 괜찮을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가 제대로 나뉘기만 한다면.

 

문제는 여기서 만들어진 부가 성벽 안에서만 맴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니 글로벌 기업이 창출하는 부가 사회에 배분되려면 인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필요하다든지, 기업의 법인세를 높여야 한다든지 하는 주장이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다. 성벽 바깥에도 정당한 몫은 나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글로벌 기업이 좀더 나누고, 좋은 일자리를 좀 더 만들고, 대기업 노동자들이 좀 더 양보하고, 대기업의 하청업체들이 좀 더 나는 거래조건을 갖게 되면 한국 경제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중략)

 

아무리 대기업이 변화하더라도,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순창의 고추장 공장들에게 일자리를 늘리고 순창 농산물을 재료로 사용하라고 압박해도, 순창을 떠나는 순창인들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스타벅스가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현대 자동차의 사내하청을 b제하면 문제가 조금은 나아질지 모른다. 그러나 해결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이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러나 그 목적은 자본주의가 이어지는 한 vrl 되기 어렵다.

 

이런 글로벌 경제에 인접하지 않은 경제, 그러나 우리 중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연관을 맺고 살아가는 경제가 있다. 예를 들면 생활경제 영역이다. 우리가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순창의 전통고추장처럼, 생산성이나 이익이 아닌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제를 어떻게 살리고 키울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의 바깥쪽에, 어떻게 새로운 경제를 구축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대기업을 통한 일자리를 양성하지 말고, 새로운 형태의 협동, 즉 이타심을 반영한 경제 체제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은 경쟁과 돈의 자리를 대체할 ‘협력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열쇠말로 접근을 해야 저성장시대에서 다 같이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작년보다 ‘신입사원 채용규모’를 축소한다는 기사가 실렸었다. 그리고 올해 국정예산에서 복지 관련 예산이 100조로 편성이 되었으며, 현대 중공업 노동자는 아직까지도 철탑위에 올라서서 시위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라는 두려운 감정이 몸속 깊은 곳에서 퍼져 나오고 있다. 이 책을 통한 ‘이타심과 협동심’이 한국의 경제에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으면서, 이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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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창.통 - 당신은 이 셋을 가졌는가?
이지훈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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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창통-이지훈

 

위인 및 명사들은 책, 방송을 통해서 자신의 성공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기고, 그들처럼 ‘내가 진짜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다’ 라는 배짱이 생긴다. 그렇지만 3일 후엔, 기존의 타성에 너무나 젖어 있어서 인지, 예전 그대로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게 된다.

 

그들이 전하는 말이 실천하기에 힘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두 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실천을 할 수 있으나, 이것을 계속해서 실천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대부분 위인 및 명사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작업 선택 시, 돈 보다 ‘하고 싶은 일’을 추구 하라.” “사람과의 대화 시,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우려주고,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해라.” 그리고 “실패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고 있지 말고, 한번 해 봐라.” 등이다. 이와 같은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알고 있고, 자신은 이미 위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가진다. 그렇지만 어떤 선택의 순간이 오면, 위의 조언들을 참조하고 행동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대학 졸업을 앞둔 학생이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의 흥미, 적성에 대한 고려도 보다 ‘어떤 직업이 연봉이 쎈 지’를 열정적으로 확인만 한다. 그리고 상대방과 대화 시 상대방이 ‘자기보다 지식 및 언어 수준이 낮다’라고 판단을 내리면, 이때부터는 ‘서로간의 대화’보다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얘기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면서(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기업들은 골목상권에 무차별적으로 침입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의 어록들’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대한 것과 그에 관한 포괄적인 의미까지 담았다. 이 책의 중심 키워드는 혼·창·통. 이 세 글자이다.

 

혼: 가슴 벅차게 하는 비전이 사람을 움직인다.

창: 끊임없이 ‘왜’라고 물어라, 그러면 열린다.

통: 만나라, 또 만나라·····들어라, 잘 들어라

 

첫째로, ‘혼’은 나를 이끄는 명분이다. 이 책에서 혼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며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고, ‘개인을 뛰어 넘는 대의’이라고 정의하다. 즉, ‘혼’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버티게 하고, 극복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넘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자에게 결국 벽은 스스로를 낮춘다. 하나의 벽을 넘어서면 또 하나의 벽이 있겠지만, 이미 하나의 벽을 넘은 사람에게 벽은 더 이상 장애물도 방해물도 아니다. 나 자신을 지탱 할 하는 이유, 그리고 명분이 바로 ‘혼’인 것이다.

 

두 번째로, ‘창’은 ‘매일 새로워지는 일’이고 ‘익숙한 것과의 싸움’이다. 즉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도전하는 하루하루가 쌓여야 비로소 발현되는 것이 ‘창’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실패할 확률이 있다는 말을 포함한다. 이 실패할 확률을 어떻게 줄이느냐에 관한 노력이 ‘창’에 포함이 된다.

 

p190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 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이 그 사람을 격려하거나 위로하는데 좋을지는 모르지만, 실패한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를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패의 원인과 과정을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일 뿐입니다. 실패는 도전과 발전을 위해 그 원인을 분석하고 거기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부주의나 오판으로 똑같은 실수를 연발하는 것은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는 실패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무조선 실패를 용인하라는 뜻이 아니다. 실패에 주저앉지 말고 원인을 분석해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실패가 쌓이고 샇일 때, 비로소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은 ‘소통해라’이다.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세부적으로 포함된 것이다. 통은 ‘큰 뜻을 공유하는 일’이며,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 그리고 ‘마음을 열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일’이다.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의 마음 및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해야 진정한 소통이 된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상대에게 나의 생각을 각인 시킬 정도로 전달 할 수 있느냐 이다. 히스교수가 제안한 6가지 방법들을 수록하도록 하겠다.

 

p225

히스 교수의 메시지 제조 기법

1.단순성: 무자비할 정도로 곁가지를 쳐내고, 중요한 것만을 남겨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요약이 아니다.

2.의외성: 사람들의 예상을 깨뜨려라. 직관에 반하는 결론을 내세워라. 허를 찔러 긴장감을 높이고, 이목을 집중시켜야 한다.

3.구체성: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상세한 이미지로 가득 채워라. 우리의 뇌는 구체적인 정보를 기억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4. 신뢰성: 세부적 묘사와 통계, 그리고 자신이 겪은 최고의 경험을 메시지에 버무려라. 통 계는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내면 더 효과적이다.

5. 감성: 상대방이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당신의 메시지가 그들이 각별히 여 기는 무언가와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6. 스토리: 메시지를 보다 일상적이고 생활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어 보여줘라. 청취자는 그 스토리의 상황이 닥치면 곧바로 그에 맞게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꾸준히 행동하기 어려운 혼·창·통. 이것들을 머리 속에만 있지 말고, 행동으로써 반영되어야 한다. 무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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