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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예언 세트 - 전2권 ㅣ 루나의 예언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강만원 옮김 / 창해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루나의 예언 1,2-프레데릭 르누아르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이다. 이 책은 오르한 파묵이 하버드대학에서 강연한 것을 정리한 것으로, 저자(오르한 파묵)가 생각하는 소설 속 플롯, 인물, 배경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설정 하는가에서 부터 소설 독자로써 한번쯤 궁금했을 ‘당신은 진짜 이와 같은 것들을 경험했나요?, 소설의 주인공은 개성적이고, 독특해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포괄한 책이다. (소설에 대해서 관심 있고,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읽어 보시면 유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을 보면서 눈에 띄는 부분은 ‘소설의 가치’를 말하는 부분이다.
P11
내게 소설의 가치는 우리로 하여금 소박하게 세계에 투사 할 수 있는 중심부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힘에 있습니다. 더 간단하게 말해, 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에게 삶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느낌을 얼마나 이끌어 내느냐에 따라 평가되어야 합니다. 소설은 삶에 관한 우리의 중심 사상에 호소해야 하고, 그러한 기대 아래 읽혀야 합니다.
즉, 소설의 가치는 소설의 중심부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힘 이면서, 이것이 우리의 실제 삶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가는 소설의 중심부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아서, 독자들은 끊임없이 소설 속 배경, 인물, 단어 등을 통해서 그 중심부로 한 걸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르한 파묵에게 ‘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중심부가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는 원동력이며, 이런 행동으로 인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는 것이다. 그 중심부는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독자마다 다르게 보일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하여 자신들의 삶에 다양하게 영향을 줄 것이다.
이번에 읽은 <루나의 예언>은 다양한 소재들로 구성 되어 있다. 몇 가지 단어로 추리면, 기독교, 예수, 자유의지, 운명, 철학, 여자, 사랑 등이다. 소설에서는 이 7가지 단어를 적절하게 버무렸다는 것이다. 그 만큼 ‘소설의 중심부’를 무엇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르한 파묵의 ‘소설의 가치’에 의거해서 중심부가 무엇인지를 찬찬히 고민을 했다. 즉, 이 소설의 중심부가 무엇이고, 그리고 나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 라는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루나의 예언>의 중심부를 찾아 나섰다.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중심부는 ‘인간이 자유의지와 운명이라는 족쇄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이 자유의지와 운명은 서로 대립 관계의 단어들이다. 자유의지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외적인 강제ㆍ지배ㆍ구속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말한다. 그리고 운명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결정을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자유롭게 삶을 개척하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삶의 길을 이미 정해져 있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유의지’와 ‘운명’이라는 놈을 가졌다 라는 의미는 ‘인간은 주체적인 동시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유의지’와 ‘운명’이라는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의 모습을 ‘조반니’라는 남자 주인공으로 보여 주고 있다. 조반니가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아는 것이 ‘독자의 삶’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운명과 자유의지를 어떻게 가지고 사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제2권, P169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분명 해졌어.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중략)
“그래, 우리는 삶에 열심이지. 그러나 그것에 매달릴 뿐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어. 존재에 집착하는 것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야. 요컨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산다는 것은 예술이지.”
조반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묵었다.
“무슨 뜻 입니까?”
“아주 간단해, 하나님은 의견을 묻지 않고 우리를 창조하셨지. 즉, 우리에게 ‘존재’를 준 것이고, 그의 뜻에 따라 우리는 존재하게 되었어.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우리는 그에 대해 부정할 수 없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을 주셨다면 이제 우리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바로 거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지. 우리는 각각의 삶에 도구가 아니라 작가가 되도록 부름 받은 것이야. 예술 작품처럼, 우리는 무엇보다 삶을 먼저 갈망해야 해. 그리고 삶을 상상하고 깊이 생각해야 하지. 마침내 삶을 깨닫고, 다듬고, 조각해야 하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모든 사건들, 다시 말해 삶의 행복하거나 불행한 모든 단편들을 통해 이루어져. 철학을 배우거나 요리를 배우는 것처럼, 우리는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해. 삶의 가장 훌륭한 교사는 삶 자체이며, 삶을 통해 우리가 겪는 수많은 경험들이 진정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지.”
이 책은 두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에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을 주신 것은 운명이지만, 삶을 작가처럼 사는 것은 자유의지 라고 말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만을 선택하는 것이고,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산다는 것은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