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꽃 - 고은 작은 시편
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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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꽃- 고은

 

<나에게 '시'는 인간다움을 주었다.>

오늘 아침 기온(2013/1/10)은 영하 12℃ 였습니다. 계절이 겨울이라서 추운 것은 이해가가지만, 추워도 너무나 추웠습니다. 군대에서는 이보다 더 추운 ‘혹한기 훈련’을 받았는데도, 저는 이번 추위에 적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정말이지 너무나 추운 날씨 였습니다.

 

예전에 저는 겨울철 아침에 기상할 때, 이성과 감성이 서로 싸웠던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이성은 ‘지금 빨리 일어나야 해, 이러다가 늦는다고.’라면서 제 육신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고, 감성은 ‘방바닥은 따뜻하고, 이불도 따스한 온기를 간직한 이때, 꼭 일어나야 겠니?. 조금만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나.’라면서 제 육신을 이불 속으로 웅크리게 만들었습니다. 매번 이들 간의 싸움에서 이긴 것은 감성이 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저는 아침밥도 못 먹고, 출근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날 때도 이들이 서로 싸우는데, 이기는 것은 ‘이성’ 입니다. 아침에 핸드폰 알람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 저는 곧바로 이불을 한쪽으로 치웁니다.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어오죠. 그리고 현관문 밖에 놓여있는 일간신문을 가지러 가는 동안 조금씩 정신을 차리다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온몸으로 차가운 공기를 느끼면서 정신을 차립니다. 이렇게 정신을 차린 다음,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방에 들어가서 오늘 하루 필요한 책들 몇 권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삶은 고구마를 챙기고 집밖으로 나옵니다.

 

아침마다 서둘러 가는 곳은 ‘집 앞 독서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 방학동안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으려고 매일매일 서둘러 그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독서실에 도착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일간 신문’을 읽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는데 대략 30-40분 정도 걸립니다. 이번에 신문을 보면서 눈에 들어온 기사는 ‘신입사원 채용규모를 축소한다는 기사’이다. 이 기사를 보고 “아~아~아~ ”라고 신음 소리를 내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책상 위에 놓은 자격증 책을 바라보면서, ‘지금 공부하는 것이 지금 같은 취업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그 신문을 다 읽고, 원 상태로 덮은 다음, 1/4 크기로 접었습니다.

 

그 이후 자격증 책을 펼치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 자격증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이야.’ 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신문기사를 잊으려고 애섰습니다. 뚫어져라 책을 보았고, 출출하다 라고 느껴지면 삶은 고구마를 입안에 넣으면서 계속해서 책을 보았습니다.

 

이런 식의 생활 패턴(집→독서실→집)은 방학을 시작하면서 계속 했고, 점점 나의 삶이 단순화되고, 기계로 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우리 안에 사육당하는 돼지처럼, 나 자신도 독서실이라는 울타리 안에 놓여 있으며 꾸역꾸역 글자들만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맛 이고, 어떠한 향기를 품고 있는지를 음미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먹는 것’ 듯이 게걸스럽게 책을 먹어 치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 제 자신을 위해서, 저는 얇은 시집을 꺼내어 읽었습니다. 사막해지고, 여유가 없었던 저에게 시들은 많은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부하고 있을 취·준·생 여러분에게도 이 시들을 전하고 싶습니다.

 

 

p11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서 있는 하루

 

오늘도 이 세상의 그런 하루였단다 숙아

 

p13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 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p24

소나기 맞는 민들레

입 오므리고 견디는구나

 

굳세어라 금순아

 

p53

친구를 가져보아라

적을 안다

적을 가져보아라

친구를 안다

 

이 무슨 장난인가

 

p58

한번 더 살고 싶을 때가 왜 없겠는가

죽은 붕어의 뜬 눈

 

p65

책을 미워한다

책 읽는 놈들을 미워한다

이런 놈들로

정신이 죽어버렸다

 

밥그릇들 포개어진 식당같이 빈 돼지우리같이

 

p86

나는 고향에서

고국에서

아주 멀리 떠난 사람을 존경한다.

 

혼자서 시조(始祖)가 되는 삶만이

다른 삶을 모방하지 않는다.

 

스무 살 고주몽

 

p95

재가 되어서야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하더이다

10년 내내

제 불운은 재가 되어분 적 없음이더이다.

늦가을 낙엽 한 무더기 태우며 울고 싶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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