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중심이 무너지다 - 조현병 환자의 우정, 사랑, 그리고 법학 교수가 되기까지의 인생 여정
엘린 색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소우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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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뭔가 기괴한 일이 일어난다. 나의 의식이 순식간에 흐릿해진다. 흔들흔들 일렁댄다고 해야 할까. 내가 녹아내리고 있는 것 같다. 내가-내 정신이-느끼기에 나는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파도에 모래가 다 휩쓸려가버리는 모래성이 된 것 같다.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너무 무서워, 제발 그만 멈춰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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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증, 공황발작, 환각, 환청, 와해, 망상, 삽화 상태를 겪는 엘린 색스는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받았다. 그 만큼 치료도 늦었다. 여러가지 증상으로 수십 년간 시달렸음에도 그녀는 옥스퍼드와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법학 학위를 받았고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석좌교수가 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녀의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조현병이라는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조현병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대부분은 뉴스에서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이유없이 잔인한 폭력을 가하는 범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는 이미지로 기억한다. 고칠수 없는 아주 무서운 정신질환으로. 책을 읽으며 새로이 알게 된 점은 정신질환을 지닌 사람 중 대다수는 폭력적이지 않으며,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적절한 치료와 보살핌을 받는다면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고 적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책은 그걸 말해주기 위해 그녀가 겪었던 상상초차 하기힘든 조현병의 경험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에게 나타난 현상이 질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상태이지만 자신이 그 병을 억제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것도 조현병의 인지적 오작동이며 자신이 병에 걸린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질병인식불능증'이라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오랫동안 약을 거부한다. 자신이 우울에서 허우적대는 것은 아픈게 아니라 나쁜 상태이며 스스로 자신을 똑바로 세우고 충분한 의지를 발휘하면 우울과 불안에서 빠져 나올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약을 먹는 것은 편법이라고, 약이 필요한 건 허약한 인격이라고 생각했다.

약을 중단하고 증상의 악화와 악몽같은 상태를 경험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그녀는 드디어 깨닫는다. 약을 제대로 복용한다면 완전히 낫는 것은 아니더라도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걸.
그녀에게 왜 그렇게 쉬운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힘든 순간을 반복했냐고 물을 수 없었다. 정신증으로 보낸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알 수 없으며 얼마나 그 병을 떨치고차 노력했는지를 책을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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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주어진 도전은 자기에게 딱 알맞는 인생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건 정신질환이 있든 없든 모두에게 주어진 도전이 아닐까? 나의 행운은 내가 정신질환에서 회복했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회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결코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인생을 찾았다는 것, 그것이 나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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