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노는 가난때문에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수습되어 버린다."회사에서 매일보던 동료가 회식자리에서 졸피뎀을 섞은 음료를 그녀에게 권하고 잠이 들자 그녀를 등에 업고 모텔로 향한다. 다행히 이를 의심한 모텔의 여사장의 신고로 미수에 그쳤지만 유부남인 그놈은 피곤한 그녀가 잠을 푹 잘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대었고 재판에서 벌금형을 받는다.이 소설은 그 사건이 중심이 아니다. 그 후로 일어난 수경의 삶과 그 가족의 삶이다. 15평의 방 두칸짜리 아파트에 모여사는 가족들- 청소일을 그만둔 어머니, 사기로 전 재산을 날린 아버지, 회사를 관두고 전업투자자라며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 남편의 형이 실종으로 함께 살게 된 조카 준후와 지후, 그리고 사건을 겪은 후 대인기피증으로 집에만 있는 수경. 이 가족이 삶의 문제를 극복해가며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답답하게만 보이는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 다정하다. 각자 과거의 사건으로 움직임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현실속의 그들의 삶은 여유가 없고 치열해도 그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는 존재였다.책의 제목인 헬프 미 시스터는 여성을 위한 생활 밀착 편의성 서비스의 앱이다.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이 앱을 통해 주인공 수경과 그녀의 어머니가 지난동안의 지지부진했던 삶과 사건 이후의 후유증을 극복하며 다른 삶을 살기위해 노력한다. 그들이 앱을 기반으로 일을 하는 현실이 전보다 안정적인지, 얼마나 불안정한지 사실은 아리송하기만 하다.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더이상 이상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세상이다.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앱에 의지하여 새로운 직업을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음식배달, 택배, 대리운전 등의 앱을 통해 이루어진 직업은 근로자를 사업자라 칭하고 고용주를 중개자로 둔갑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점을 들어냈다. 책에서도 플랫폼을 통해 일하며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며 환호하기도, 앱의 노예가 된 듯한 느낌에 절망하기도 하는 순간들이 교차한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노동의 형태에 대해서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는 소설이었다.나는 책을 읽다가 감동하는 경우는 있어도 울컥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별스런 위로의 말이 아니었는데도 이웃이 수경에게 해 주는 이야기에 울컥했고 눈물이 조금 차올랐다. 불안하기만 한 현실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을 찾고 있는 내용이 내 마음까지도 따스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