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도둑은 나쁜 사람이야. 남들한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지.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두렴. 훔치는 것으로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건 좋은 거란다."

"… 카즈마, 진심이니?"
"네?"
"사랑하는 여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야. 카즈마, 너는 각오가 돼 있느냐?"
"그, 그럼요."
"그럼 다행이다. 넌 너만의 길을 가거라."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돌아갈 곳이 있지만 자신만 돌아갈 곳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 들어왔다.

‘걱정할 거 없어. 사쿠라바 집안과 미쿠모 집안, 두 집안은 모 두 다 최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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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17
기숙사는 거대한 깔때기처럼 이야기가 모이고 섞인 뒤 흐듬을 만드는 곳이었다. 모두가 공동 관심사를 가진 청춘의밀집 지역인 데다 저녁 9시 이후에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간에 있으며 언제든지 서로 찾아가 만날 수 있기 때문같은 출신지와 같은 과와 같은 고교 출신과 같은 방끼리 말이 넘나들다 보면 수많은 교집합이 생긴다. 이야기느서로 뒤섞이고 보완되면서 빠르게 공유의 물살을 타고 흘러갔다.

p. 279
긴 시간을 알고 지낸 사람들의 인생을 각기 포물선 그래프로 그려보면 뜻밖에도 서로 맞닿는 경우가 적다는 걸 알수 있다. 마치 시소게임 같다. 한 사람이 오르막길로 상승할때 다른 사람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한 사람이 언덕마루에서서 경치를 내려다볼 때 다른 한 사람은 바닥에서 헛발질을 하고 있기도 한다. 아침에 볕이 들었던 자리가 저녁이 되면 싸늘해지듯 빛은 자리를 옮겨 다니는데 어둠은 규칙 없이 찾아온다.

p. 319
비관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신체의운동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능동적인생각에도 힘이 필요하다. 힘내라고 할 때 그 말은 낙관적이되라는 뜻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쉽게 힘을 낼 수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역설적인 점은 비관이 더많은 희망의 증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어둡고 무기력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관을 일삼는 사람이야말로 그것이 깨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자신 같은비관론자도 설득될 만큼 강력한 긍정과 인내심을 요구하게되고, 결국 유일하게 그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p. 335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p. 337
우리 둘 중 누군가의 기억이 틀린 것일까. 아닐지도 모른 다. 기억이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만나 차이라는 새로움을만들어낸다. 그리고 한 사람의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차이 나는 것만이 반복되어 돌아온다" 라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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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16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 문제를 낸 사람과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기준, 즉 자기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알아야 하기때문이다. 정답을 맞히려는 것은 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기는 권력에 따르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그저 권력에 순종했을 뿐이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모범생의 착각이다. 그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더 완강한 틀에 맞춰가는 것이다. 

p. 193
그 시절 우리에게는 수많은 벽이 있었다. 그 벽에 드리워지는 빛과 그림자의 명암도 뚜렷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바위에 부딪쳐 다른 지점에서 구부러지는 계곡물처럼 모두의시간은 여울을 이루며 함께 흘러갔다. 어딘가에 도달하기위해서 말이다. 그때 우리 모두는 막연하나마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지금과 다를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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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8
남들에 의해 소환되는 그 시절의 나도 싫었고, 그들이 알고 있는 그 시절의나인 척하고 있을 게 분명한 현재의 나도 싫었다.
여러 사람과 공유한 시간이므로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처럼 과거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끼리 너무 오랜 세월을 만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턱을 치켜들며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사람들은모든 게 일회성이므로 그래도 된다고 대꾸했다.

p. 84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p. 112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가진다. 약점은 연약한 부분이라 당연히 상처 입기 쉽다. 상처받는 부위가 예민해지고 거기에서 방어를 위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이 어떻게 취급당하는가를 통해 세상을  읽는영역이 있다. 약점이 세상을 정찰하기 위한 레이더가 되는 셈이다.
그들은 자주 위축되고 두려움과 자괴감에 빠지지만 그런태도를 되도록 감춰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약점이 있다는 걸 공유하면 편해지긴 하지만 무시당하는 걸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점을 숨기고 방어하고 또 상처받았을 때 태연하게 보이는 법을 연구하면서 타인을 알아간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 이 있을까.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나를 조종하고 휘두를 힘을 가진다. 우리는 장점의 도움으로 성취를 얻지만 약점의 만류로 인해 진정 원하던 것을 포기하거나 빼앗긴다. 어쩔 수 없이 약점은 삶의 결핍과 박탈을 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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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9-30
참 이상한 일이야. 스위트룸을 포기할 준비가 되었을 때 백작의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친구나 가족과 헤어지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역에서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를 배웅한다. 사촌을 방문하고 학교에 입학하고 군대에 입대한다. 결혼을 하고 외국 여행을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가까운 사람의어깨를 붙잡고서 그가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고, 머잖아 그로부터 소식을 듣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것은 인간경험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작별을 고하는 법은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물건과 작별야만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배우려 들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친구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극성스럽게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집착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꽤 많은 비용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그 북건들을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긴다. 표면의 먼지를 떨고 광을 내며, 가까이에서 너무 거칠게 노는 아이들을 나무라기도 한다. 그런물건들에 계속해서 추억이 쌓여 점점 더 중요성을 띠게 되는 것을허용한다. 우리는, 이 장식장은 우리가 어렸을 때 안으로 들어가 숨던 장식장이야,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우린 이 은색 촛대들을 탁자 위에 나란히 놓아두었지, 이게 바로 그녀가 한때 눈물을 닦던 그손수건이야, 같은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정성껏 간수해온 이런 물건들이 친구나 동반자를 잃어버리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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