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은 이렇듯 늘 슬픔과 고통의 틈새를 비집고 모습을 드러냈다. - P313

기대에 부푼 한인 1세대들이 모인 자리에는 영주귀국이야기뿐이었다. 한국의 발전상이 알려지다 보니 아래 세대 사람들도 귀국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적십자사가 대상자 선정 기준을 발표하자 한인 사회는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고향마을 아파트에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할린으로 이주했거나, 사할린에서 태어난 사람만이 갈 수 있었다.
1945년 8월 15일은 조국이 해방을 맞은 날이지만, 사할린 한인들에겐 그로 인해 다시 한번 고향과 가족을 잃게 된 날이었다. 일본의 패전 선언으로 이산의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50여 년 뒤 또다시 그 날짜 때문에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그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해방절을 챙기며 조국의 광복을 기념해왔던 한인들에게 그보다 큰 배신이 없었다. - P412

"나를 믿지 못했던 걸까? 오빠가 있었대도 그랬을까?
혹시 여전히 집안의 안 좋은 일들이 모두 나 때문이라고생각하셨던 걸까? 그래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신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 속상하고 화가 나서 미치겠어."

"그런데 나는 차라리 그게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까지 자식들 소식 기다리고, 걱정하셨으면 더 가슴 아팠을 것 같아. 그리고 어쩌면 타마한테 더 이상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 그러셨는지도 몰라.타마는 그동안 너무나 훌륭하게 장녀 노릇을 했어. 내가다봤어. 그러니까 더는 자책하지 마, 언니."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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