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다 두고 갈 저런 물건들이 무슨 소용이야." - P48

"가난과 사랑은숨길 수 없는 법이라 하지 않던." - P217

"이 실에 새 실을 한 가닥 섞어 짜면 현실이란 걸 전혀 알수 없지."
수남은 헌실을 새 실로 만든 것처럼 사람의 운명도 바꿀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회동 저택을 떠나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본 지금은 세상 어딘가에 운명을 바꾸는 길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새 실처럼 만드는 뜨거운 김 같은 게 사람 세상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 P232

"준페이, 사내란 언제가 기회인지 알아차려야 하고 또 때가오면 과감하게 낚아챌 줄 알아야 하는 거다." - P395

독립운동 같은 큰일을 하니 사소한 잘못은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입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떠들면서 실생활에서 사람을 차별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 또는 자리에 연연해 암투를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 그 조직에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 P403

"안이 환할 때는 밖이 하나도 안 보이더니 불을 끄니까 보이네요." - P426

돌이켜 보면 수남은 태어나면서부터 차별받으며 살아왔다. 딸이라서, 가난해서, 신분이 낮아서, 못 배워서, 조선 사람이라서…………. 그동안 수남은 그게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지못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게, 신분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한테, 무식한 사람이 많이 배운 사람한테, 조선 사람이 일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걸당연하게 여겼다.
미국은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원주민을 총칼로 쫓아내고세운 나라였다. 흑인들 또한 노예로 삼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고 왔다. 노예제도나 사람을 사고파는 일은 법으로 금지됐지만 흑인들에게 가해지는 무시와 차별은 여전했다. 철도나 다리 건설, 사탕수수밭 인부 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동양인들도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다. 흑인과 동양인의 출입을 금하는 식당도 있었고, 버스에는 출입문과좌석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흑인은 백인과 결혼할 수 없었고 백인에게 무조건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백인들은자기들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고 도덕적이라고 믿었다.
존스 부부는 자기네끼리 말할 때 흑인이나 일본인, 중국인을 니거, 잽, 칭크라고 불렀다. 수남은 처음엔 인종을 비하하는 모욕적인 표현이라는 것도 몰랐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 영어가 늘면서 알게 됐는데, 알면 알수록 일본이 조선에 하는 짓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 P459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수채령의 몸종으로 삼으려던 안 서방 딸이 싫다고 울 때 수남이 나서며 했던 말이다. 마름의 말도 기억났다. 거기가 어디라고. 그때의 풍경이나 정황은 희미했지만 그 말만은 뚜렷하게 생각났다. 그때 수남은 고작 일곱 살이었다. 마을도벗어나 본 적 없는 어린 여자아이가 부모와 집을 떠나겠다고 나선 것이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되느냐는 한마디로 수남의 인생은 바뀌었다.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수남은 그 아이에게 묻고 싶었다.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 때문이었을까? 가난한 가족을 위해서였을까? 공주처럼 차려입은 채령이 부러워서였을까? 저절로 굴러가는 자동차가 신기해서였을까?
수많은 질문에 마음 깊은 곳에서 일곱 살 수남이 ‘거기‘
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대답했다. 강휘가 여기까지온 널 존경한다고 했던, 바로 ‘여기‘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수남이 품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열망 덕분이었다. 어쩌면 더 거슬러 올라가 수남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큰언니가 들려준 바깥세상 이야기가 삶을 포기하려던 배 속의수남에게 마지막 힘을 내게 했다. 그 뒤에도 수남은 늘 무엇이 있을지 모를 그곳을 꿈꾸며 살아왔다. - P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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