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는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내가 잊으려고했던 것은 그가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내 자신이었다. 그토록겁 없이 달려가던 나였다. 스물두 살, 사랑한다면 그가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아프리카인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믿었던, 사랑한다면 함께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나누고 비밀이 없어야한다고 믿었던 스물두 살의 베니였다. 그를 만나지 못해도, 영영 다시는 내 눈앞에 보지 못한다 해도, 잊을 수 없다는 것을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그를 떠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 P26
"그건 말이야. 한국인들에게는 흰빛이라는 것은 신앙과도 같은 거야. 전쟁이 나거나 흉년이 나던 어려운 시절에, 땔감조차없던 시절에도 한국인들은 옷을 빨고 불을 지핀 후에 흰옷을 삶아 더욱 눈부신 흰빛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지켰어. 우리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지. 흰빛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색이래." - P65
"사람이 사는데, 꼭 나쁘다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더구나 누구를 사랑하는데, 그건 말이야, 그저 과거의 일일 뿐이야. 되돌릴 수도 없는 거, 그냥 오늘을 살고 내일을 바라보고 그러는 게좋지 않겠니?" - P87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야. 그건 지옥으로 들어가는 거지. 결혼은 좋은 사람하고 하는 거야." - P91
"잊지 못할 줄 몰랐어. 실은 잊지 못할 줄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줄은 몰랐던 거야. 결국 넌 영원히 나와 함께 살아가게 된 거야. 어쩌자고 돌아왔니, 이 나쁜 자식아, 이 나쁜 자식아." - P101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남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 빈자리 속에서 비로소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슬픈 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기 때문에.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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