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꽃잎이 해인의 손으로 톡, 하고 떨어지고 나서야해인은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가장 원하던 삶을 이뤄줄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해인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카메라 필름을 빼낸 자리에 푸른 꽃잎이 날아와 담긴다. 꽃잎 같은 사람이 마침내 꽃잎이 되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날이 밝아온다. 슬픔으로 퍼렇게 멍든 해인의 마음처럼 새벽도 푸르다. "푸른 새벽은 사랑하는 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시작하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아침이.. 아침이구나." 1층으로 내려온 해인이 남은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생각에 빠져든다. 간절히 바라는 일은 언젠가 상상하지 못하는방식으로 이루어진다던데. 얼마나 더 간절히 바라야만 하는 걸까. 해인은 가슴이 아프지만 지은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 P12
세 사람은 서로에게 미안해 창밖만 바라본다. 우리는 왜 이리 미안해야만 하는 걸까. 가난은 사랑하는 이를 매일 미안하게 만든다. - P18
봉수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근데 우리 다음 생에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름으로 만나지 말자. "그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름으로 만나지 말자. 우리두 번은 하지 말자, 이런 삶." 봉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슬픔은 원래 속으로 삼키는 것아닌가. 그래서 늘 속에선 피 맛이 났다. 뱉을 일 없는 슬픔의 맛은 빨갛다. - P32
자동차에 기름은 다 채우지 않은 채로 여행을 떠난다. 핸들을 잡은 봉수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세 사람은 길을 떠난다. 드디어, 오랫동안 생각해 온 그날인 것이다. 불운과 불운이 만나 행운이라 자신들에게 거짓말하던 달콤한꿈에서 나와야 할 때,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가기로 했다. 태어난 건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는 건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도 최대한 미루고 버티고 기왕이면 잘 살아보려 했는데. ‘잘‘을 빼고도 ‘살아본다‘는 것 자체가 왜 이리 어려운지. 세 사람이 출발하자마자 비가 내린다. 방금까지 쨍쨍하던 하늘에서 장대비가 내린다. - P33
지우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가요. 마음의 얼룩을 행복한 기억으로 바꾸어 찍어드려요. 보고 싶은 마음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줄 수도보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줄 수도 있어요. 당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당신의 슬픔이 안녕할 수 있다면얼룩진 마음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꾸어 드립니다. 어서 오세요, 행복한 마음을 찍어드리는 마음 사진관입니다. -사진관 주인 백 - P42
"오메 비가 다시 오네, 장마인가. 저리 비가 시원하게와야 무지개도 뜨고 해도 나제. 비가 오고 폭풍이 불고 바람이 불어야, 또 마른 날이 오제. 시원하게 내리는 비 핑계삼아 시원하게 울어재낄 수도 있고 말이여. 오늘 밤은, 저비에 많은 게 씻길 거여. 암, 그럴 겨."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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