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의 반복이잖아." 최선생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일평생 원했지만 뭘 어떻게접근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해하던 일이 있다고 쳐봐. 이렇게풀면 되지 않겠느냐고 밑그림을 보여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손을 덥석 잡지, 안 잡고 배기겠니?" "그 밑그림이라는 게 뭔지는 지금도 비밀이고요?" "때가 되면 다 얘기해줄게. 우리 선민이가 아주 전심전력으로 연구하고 있어." - P37
"층간 소음만 보면 천장이고 벽이고 얇은 거 같잖아." 최선생이 가방에서 근시 교정용 안약을 꺼내다 말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집안에서 문 닫고 떨어져 있으면 기침을 하고 앓는소리를 해도 잘 안 들린다는 게 신기하지 않니." - P69
"제가 딱히 너그러운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영이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우주적인 관점에서보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티끌 같은 존재더라고요. 원래도 알고는 있었죠. 그래도 그걸 온몸으로 느껴본 게 참 좋았어요. 마음이 한결 편해졌거든요. 왜 나는 이렇게 시시할까 괴로워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원래 그런 거니까, 너무 당연한거니까요." - P132
"옛날에 촌에서 왜 노인을 공경했는지 알아? 언제 씨를 뿌리고, 논에 물을 대는지 오래 겪어봐서 아니까. 인간은 보통겪어봐야 알아. 하지만 안 겪어보고도 아는 사람이 있지. 필부 필녀들의 간장종지만한 사고회로가 빤히 보이는 사람이 있거든. 그런데 자기들아, 세상 이치가 읽히면 편하기만 할 것 같지만, 실은 고독한 거야. 내 속을 까뒤집어 보일 데가 없거든, 알아듣지를 못한다고, 사람들이! 시대가! 그러니까 세상은 빤한데 저 사는 재미는 없지. 그럴 때 권태를 느끼는 거야, 인간은." - P208
"너, 설마 집에서도 그런 생각 하는 건 아니지?" "하는데." 모영이 대답했다. "그래도 집에서는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으로 한참 우울하지는 않아. 그럴 때는 얼른 언니 상태가 어떤지 보거든. "스팀 타월도 가져다주고, 어깨도 문질러주고 하려고?" "응." 모영의 말에 이심이 웃었다. "다 네가 나한테 해주는 거잖아. 그럼 너한테는 뭐가 남아? 너무 너만 손해보는 거 아니야?" "너만 손해보는 거 아니야? 하고 진지하게 물어봐주는 사람이 남잖아. 그런 사람이 가족으로 항상 내 옆에 있다는 게 안심이 돼."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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