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하고 보잘것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는오늘까지.
내일은 분명 특별한 일이 생길 거야. 그동안의 우중충한 잿빛 나날을 뒤바꿀 멋진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앞으로 다채로운 나날이 펼쳐질 거야.
틀림없어.
그런 상상을 하며 잠자리에 든다.
하루도 빠짐없이. - P11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뭘 하고 싶었던 걸까. - P22

"어째서 그렇게 변해버린 거야?"
"몰라. 엄마가 그러더라. 아빠와는 가족이 되지 말았어야 했나 보다고."
"무슨 뜻이야?"
"남으로 지내는 편이 나았을 거란 뜻."
"잘 모르겠어."
"난 조금은 알 것 같아. 가족끼리는 거리낌이 없잖아."
"그래서 좋은 거 아냐? 일일이 배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거야"
"바로 그거야. 아무리 가족이라도 서로를 배려해야만해.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해버리니까 싸움이 되는 거야."
"그렇긴 하지만."
"싸우면 강한 쪽이 이기잖아. 강한 사람은 마음에 안드는 건 참지 않아. 말이든 행동이든 전부 자기 마음대로지. 그래서 아빠처럼 돼버리는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 P29

생각해 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단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생각해 봐야 부질없는 짓이야.
그래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존재를 - P35

내일부터 나는 조금은 변할지도 모른다.
따분한 직장이고 아르바이트일 뿐이지만, 조금이나마정신을 차려서 일하자. 그러다 보면 메이에게도 분명 당당히 말할 수 있겠지.
아르바이트이긴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나는 메이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상한 건가.
아니, 이상하지 않다.
한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소중한 존재를 나는 되찾았다. 더는 두 번 다시 잃고 싶지 않다.
소중히 여기고 싶다.
*
따분하고 보잘것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는 오늘까지.
내일은 분명 특별한 일이 생길 거야. 그동안의 우중충한 잿빛 나날을 뒤바꿀 멋진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앞으로 다채로운 나날이 펼쳐질 거야.
틀림없어.
그런 상상을 하며 잠자리에 든다.
지금까지는 매일 그렇게 생각해 왔다. 기대했다가 배신당하고 늘 같은 희망을 품은 채 잠들었다.
아마 그런 나날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겠지.
틀림없다.
내일은 다른 내가 될 거야, 진심으로. - P51

‘그걸로는 부족해. 저번 주에 택배로 이것저것 보내줬잖니? 사다 먹거나 외식만 해서는 아무래도 골고루 영양분을 섭취하기 힘들단다. 보내준 반찬은 꼬박꼬박 먹고있니?‘
당연하지.
‘거짓말 아냐?‘
물론 거짓말이지. 냉장고에 넣어둔 채 손도 안 댔다. 아마 벌써 썩기 시작했을걸. 또 한꺼번에 모아서 월요일에 음식물 쓰레기로 버릴 거야.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역시나.
그 사람은 나에 관해서라면 늘 무엇이든 알고 있다니까. - P57

잔소리를 듣기도 했고 그 말이 정답이긴 하다. 그래서더더욱 고분고분 따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본가를 벗어나고 싶었다.
혼자서 해나갈 수 있다. 이제 난 어린애가 아니다. 한사람의 어른이다. 언제까지나 부모 밑에서 편안히 살고 싶지 않다.
그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누구에게? - P64

스스로도 잘 안다. 나는 얄미운 꼬맹이였다.
"거짓말하기는."
엄마는 그런 나를 다정하게 흘겨보면서 말했다.
"엄만 다 알고 있단다."
나는 엄마 껌딱지였다.
언제부터 변해버린 걸까?
그래, 중학생 무렵부터다. - P83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했다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야만 한다.
간절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이시자카와 말을 하게된 그 시절부터였다. - P86

고맙긴 하다. 그러나 지긋지긋하다.
그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고 반복된다.
나는 포장해 온 쇠고기덮밥의 용기를 열고 천천히 먹기시작했다. 맛있다. 고기와 지방에 밴 짭조름한 단맛, 친숙한 맛이다.
맛있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육즙, 최고다. 푹 익은 양파와 채소도 먹는다. 오늘 저녁은 건강식이다. 엄마도 잔소리는 못 할 테지.
그러나 점점 마음이 무거워진다.
왜 나는 엄마의 보살핌을 불편해하는 걸까. 어째서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지. 난 무엇에 반항하고 있는걸까?
답을 알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이시자카를 알게 된 이후부터다.
그때부터 쭉 나는 엄마의 보살핌에서 도망칠 궁리를 해왔다. - P97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스기랑 난 다르니까."
물론 다르다. 알고 있다.
그래도 난 이시카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내가 처한 ‘당연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길 바랐엄마가 내미는 ‘당연한‘ 손길을 귀찮다고 생각하게 된것이다. - P102

절대 용서 안 해.
그날 엄마에게 터트려버린 감정을 나는 마음에 떠안은채 살아가고 있었다.
악을 쓰면서 진짜 용서할 수 없었던 건 어머니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이시자카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도움도 주지 못했던 무력한 나.
엄마 곁을 떠날 거야.
독립해서, 어른이 되기만 하면 이시자카에게 힘이 되어줄 거야.
난 그렇게 믿었다. 믿고 싶었다. 도저히 단념하기 힘들었던 나의 과거그랬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랬으면서 모른 척해 왔다.
엄마 탓이 아니다. 나 자신의 문제다.
인정하자.
여전히 나는 응석받이일 뿐인 한심한 어린애였다.
인정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기분이 든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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