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 재하가 있어서 연자는 살아야 했다. 뜨끈하고 작은 핏덩이 재하를 처음 안던 날, 연자는 스스로 죽을 자유 따윈 없어졌음을 알았다.
그리고 산다는 것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여유 따윈 없었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고 살아 있으니 살았다. 그리고아직도 살아 있다. 어떻게 그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다 지난 일이지만, 떠올리면 어제처럼 생생하다. - P159

"행복한 일은 천지에 널려 있어요. 늦잠을 자서 출근해야 되는 줄 알고 허겁지겁 눈을 떴는데 알고 보니 주말이야. 안도하며 눈을 감아요. 마저 자는 잠이 얼마나 달큰한지. 저는 그냥 지금 이런 일상이 좋아요. 불행하다 느꼈던상처를 지우고 싶던 순간이 물론 많았지만 그날들이 있었으니 오늘이 좋은 걸 알지 않겠어요. 불행을 지우고 싶지않아요. 그 순간들이 있어야 오늘의 나도 있고, 재하도 있으니까요." - P171

"사장님, 저 지금 사이버대학교 다녀요. 상담심리학 공부 하고 있어요. 공부해보니 제가 가진 상처가 다른 이의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큰 도움이 되네요. 참 사는거 이상하죠. 그때는 아파 죽을 거 같아서 제발 그만하게해달라고 하늘한테 애원했는데, 돌아보니 그 상처들도 다내 삶이었어요. 상처 없으면 나도 없더라고요." - P172

살아 있길 잘했다. 태어났으니, 살아 있으니, 살아지고숨을 쉬었다. 죽지 못해 살았다. 하지만 이제 살아 있으니살고 싶어지고 살고 싶어지니 사는 게 행복하다. 행복한 삶을 만드는 건 타인이 아닌 나의 마음가짐이라는 걸 연자는오랜 시간을 지나 와서야 깨닫는다.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려고 그토록 긴 불행의 터널을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 P173

그러고 보면 마음이라는 게 보이지도 않고 형태도 없는것이 참 힘이 세다.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고, 마음으로부터해결되고, 마음으로부터 끝이 난다. 마음으로부터 꽃이 피기도 하고, 마음으로부터 불행이 지속되기도 한다. 마음은 어쩌면 모든 끝과 시작의 열쇠인 것일까. - P177

마음은 꽃과 비슷하다. 보살펴주고 햇빛을 쐬어주면지기도 하고 피기도 하고 짓무르기도 하고 냄새도 나고 벌레도 생기고, 그러다 잎도 다시 피어나고 다시 꽃도 피는존재.
아름답기도 슬프기도 한 양가적 이면이 마음인 걸까. 아름답기만 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아니, 과연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슬픔과 아픔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고 기쁨과 환희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은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슬픔과 아픔이 아름답고 기쁨과 환희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무너질까 봐, 숨기고 있는진실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이리 오래 살아도 모르는 것투성이라니. - P178

"꽃잎들아, 걱정 말아. 모든 일에는 때가 있어. 곧 좋은일이 생길 거야. 그리 믿으면 그리 된다. 그러니께 너들도너들 자리로 이제 가."
사장의 말에 꽃잎들은 뱅글뱅글 돌며 사라진다. 서로가서로를 염려하는 온기로 가득 찬 이런 밤은 잠도 순하다.
골목을 환히 밝히는 은은한 달빛도 미소 짓는 밤이다. 이런밤은 해가 비추지 않아도 낮보다 환하고 따뜻하다. 어둠 속에 있다고 꼭 어둠이 아니고 빛 속에 있다고 꼭 빛이 아니다. 어둠 속에 있어도 빛나는 게 있고, 빛 속에 있어도 어두운게 있다.
오늘은 순한 밤이다. - P182

"지금 들고 계신 그 옷이, 옥상 햇빛에 잘 마른 옷이에요. 마른 옷에서 꽃잎은 나오지 않아요. 매일 오후 지는 해를 향해 날아가는 꽃잎들은 사람들 마음의 얼룩에서 나온상처예요. 잘 말라서 꽃이 된 상처를 해를 향해 보내요. 뜨거운 태양빛에 타서 빛이 되고 밤에는 별이 되기도 해요."
"말도 안 돼요. 상처가... 어떻게 꽃잎이 되고 빛이 될수 있나요?"
"말이 안 되는 일을 말이 되게 하는 게 마음 세탁소예요."
"...그래도 제 상처는 꽃잎까진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누구나 자신의 상처가 가장 크고 아파요. 너무 아픈 상처는 연고를 바를 용기도, 치료할용기도 나지 않아 꺼내보지 못하고 마음 안에 꽁꽁 숨겨 두고 살아가요. 몸에 난 상처는 피가 말라 딱지라도 지는데,
마음에 난 상처는 딱지가 지지도 않죠. 베인 데 또 베이면더 아픈데, 마음도 자꾸 베여 아프고요."
"...맞습니다.... 아파요...." - P200

오랫동안 지켜봤던 공간인데, 실내는 밖에서 볼 때보다따뜻하고 편안하다. 밖에서 보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은언제나 다르다. 안과 밖의 다름을 결정짓는 온도는 어쩌면개인의 생각과 시선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느끼고 싶은 것을 느끼니까. 또 사람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것을 들려주니까.  - P202

"영희 삼촌, 지난 시간들도 오늘 하루도 견뎌내느라 수고 많았어요. 내일은 버티지 말고 조금은 웃으며 살아내봐요. 하루 지나 모레도 버티지 말고 조금만 즐거워봐요. 견디고 버티고 그러다 보면 살아지긴 하는데, 그게 너무 오래되면 삶에서 견디고 버틴 기억밖에 없잖아요." - P207

"이런 말 알아요? 기억이 열이라는 동그란 원으로 이어져 있다면 좋은 기억 하나가 안 좋은 기억 아홉 가지를 덮어준대요. 그래서 하나의 좋은 기억을 늘리는 게 중요하대요. 지나간 안 좋은 기억은 저 밑에 두고, 새로운 좋은 기억을 제일 위에 덮으면 어떨까요. 영희 삼촌한테 오늘의 기억이 다른 기억들을 이불처럼 덮는 커다란 원이 된다면 좋겠어요." - P209

"만약 누군가 나를 비난하고 욕설을 퍼붓는다면, 받지마세요. 택배도 수취거부나 반품이 있듯이 나를 모욕한 그감정이나 언행을 반품해보세요. 물건을 주었는데 받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나를 싫어하고 미워한다면 그마음을 받아서 상처로 만들지 마시고 돌려주세요. 받지 않고 돌려주었으니 상처는 내 것이 아니고 상대의 것입니다.
마음의 천국을 방해하지 말고 수취 거부하세요. 그래도 됩니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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