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최종본).txt
어쩌면 이 파일의 끝에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이야기의 ‘에필로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운이 좋다면 이번 3회차에 대한 정보가 더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수행해야 안전한 결말에 도달할지 알려주는 지침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마지 막이 비극이 라면?」
만약에, ‘최종분‘의 의미가 ‘더 이상 바뀌지 않는다‘라는 뜻이라면?
「네가 그걸 바꿀수 있을까?」 - P9
"왕자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미안합니다. 빌스턴 경." "예? 갑자기 무슨……." "그간 너무 고생만 시킨 것 같습니다. 절 지키느라 힘드셨다는 것 잘 압니다." 빌스턴 프레이머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챙겨드리지 못했지요. 몇 번이나 제목숨을 구해주셨는데 말입니다." 이번 시나리오까지 오는 내내 이현성에게는 줄곧 도움을받았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순번이 늘 밀려났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함께 싸운 설화들이 우리를 대신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 P39
나는 근위대장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정말 이럴 겁니까?" 근위대장이 피식 웃었다. "이제 와 죽기가 두려워진 모양이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제 검이 되어주기로 하셨잖습니까." 근위대장의 표정에 희미한 당혹감이 어렸다. "무슨 헛소리지?" "벌써 맹세를 잊으신 겁니까? 저와 함께 이 모든 시나리오의 끝을 보겠다는 말들은 모두 거짓이었습니까?" - P45
나는 잠깐이지만 그런 기대를 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 녀석이라면 나를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김독자가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는・・・・・・ . 이미 오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라는 사실을.」시나리오에 진입하기 직전 눈앞에 떠올랐던 최종본의 글귀. 그것은 이런 의미였다. "있습니다." "죄인은 말하라." "내가..….…."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 수영아." - P48
<폭망한 시나리오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 한수영 著 ≫. - P65
기억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렇게 육 년이 지났고 - 독자 씨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요? - 제 생각엔 올해 안에 오실 것 같습니다. 칠 년이 지났다. - 칠 년이나 임금을 체불하다니, 완전 악덕 기업 아니에요? - 나중에 꼭 노조를 설립합시다. - 꼭 그렇게 해요. 잊지 말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던 약속은한 달에 한 번이 되었고, 이내 두 달에 한 번이 되었다. 만나서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팔 년이 되던 어느 날, 정희원이 멍한 목소리로 물었다. - 우리 뭔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요? 이현성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 있잖아요, 현성 씨. 만약 내가 현성 씨를 잊게 되면. - 제가 기억하겠습니다. - 날 죽여줘요. 그것이 정희원과 이현성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희원 씨. 허공에서 몇 번이고 둘의 검이 부딪쳤다. -희원 씨. 반복된 [전음]에도 정희원은 대답이 없었다. 침묵이 곧 대답이었다. 까마득해지는 시야. 이현성은 비틀거리면서도 그가 기억하는 정희원을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마침내 가까워진 정희원의 두 눈을 보며, 이현성은 오랫동안 자신이 하지 못한 말을, 그리고 앞으로도 할 수 없을 말을처음으로 건넸다. -좋아합니다, 희원 씨. - P98
"방법이 세 가지나 있다는 건, 그 방법을 ‘방법‘이 되게끔 만든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뜻이겠지." "뭐?"
- 네가 설화를 제대로 읽지 않으면, 오히려 설화가 너를 읽게 될 거다.
저 거대 설화는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실현하기 위해이 세계의 배역들을 조종해왔다. 이곳의 환생자는 모두 저거대 설화의 실현 도구로서 수백 수천 번 배역을 반복해왔겠지. - P117
"오해하지 마. 너한테 왕위를 주려는 게 아니니까. 왕이 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내 동료." 커지는 왕의 눈을 보며, 나는 말을 맺었다. "<김독자 컴퍼니>의 한수영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앞에서 시나리오 메시지가 폭발했다.
[시나리오 선택지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장르 선택지 ‘판타지‘가 붕괴합니다!][장르 선택지 ‘퓨전 판타지‘가 붕괴합니다!][장르 선택지 ‘로맨스‘가 붕괴합니다!][당신은 어떤 장르 선택지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용케도 알아냈네, 김독자.」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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