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소리 말어라. 그게 세상인 게야. 강원도에서 옥중출마자가 당선된 걸 봐라.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다" - P59

가난이란 굶주림과 헐벗음의 끝없는 수렁이었다. 굶주림은 속으로 사무치는슬픔이었고, 헐벗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창피스러움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버린 다음 식구들은 전부 점심을 굶어야 했다.

"서러움 중에 큰 서러움이 배는 서러움인데……" - P185

홍성기가 그러는 것은 아직 고등학생이라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사리 분별을 못하는 탓인지, 대학을 다니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평생 그러기가 쉬웠다. 친일파들이 계속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는 그런 태도로 얼마든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덕으로 남들보다 먼저출세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홍성기나 장경식이 친일파 편을 드는 것은 그나마 자기네 아버지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 아이들의 태도였다. 언쟁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거 다 지나간 옛날얘기 아니냐. ‘이제 와서 따져서 뭐 하자는 거나 ‘우리도 그때 살았으면 벌수 있었겠냐. ‘어쩔 수 없어서 그랬을것 아니냐‘ 이런 반응들을 보였다. 그런데 그건 그들의 생각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아이들은 마치 제 생각인 것처럼 그대로 되뇌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친일과 세상에서 친일파들이 좋도록 꾸며낸 말에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어떤 아이는 ‘그런 걸 따지는 건 촌놈 짓이라고도 했다. 그 ‘촌놈 짓‘이란 ‘촌스러운 짓일 수도 있었고, ‘촌놈들이나 하는 짓일 수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친일파들을 공박하고 나선유일표나 이상재의 고향이 지방이었다. 어쨌거나 촌놈이란 좋지 않은 욕이었다. - P190

"너, 수학이나 과학 과목들은 어쩔 수 없다 치고, 음악이나 미술 과목 교과서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니? 온통 서양 음악에 서양 미술인 거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 음악이 없고 우리 미술이 없는 거냐? 우리 것은 무조건 무시해 버리고 서양 것이면 무엇이든 사족을 못 쓰고 가르쳐대는 이런 식의 교육이 앞으로 몇십년 계속돼 봐라, 우리 꼴이 뭐가 되겠는지, 모두 서양 것이면 무조건 높고 귀하게 보고, 우리 것이면 무조건 천하고 나쁘게 보는 얼간이들이 돼 있을 테니까. 조선시대에만 사대주의가 있었던 게 아니야. 해방 이후의 이런 작태는 신사대주의다."
그래서 그런지 오빠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퍽 고급한 문화생활로치부되고 있는 르네상스니 세시봉이니 하는 음악감상실에 드나드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오빠의 말은 되새겨볼수록 맞고, 그럴수록 박영자는 안타깝기만 했다. 일개 대학생이 깨닫고 있는 그런 일을 어째서 교과서를 만드는 유식한 사람들이 모를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했을때였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 유치하고 촌스러운 것을 배워 무엇하느냐고 비웃었다. 우리의 것은 이미 친구들의 의식 속에 유치하고 촌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고, 그런 말을 하는 자신까지 유치하고 촌스럽게 취급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들을 설복시킬 도리가 없었다.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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