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의 적은 파도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자꾸 편한쪽으로 달아나려고 하는 나 자신의 물러터진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 에리도, 어떻게 해서든 ‘지금‘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고 개똥이고 간에 우리에게는 지금 이 순간밖에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밀려드는 큰 파도를 뚫고 먼바다로 나가는 것과 흡사하다. 두려움을 떨치고 나 자신을 일으켜 세워 용기와 무모함의 경계선을 가르고 들어가 물을 힘껏 할퀸다. 바닷속에 끌려 들어가 모래섞인 물을 들이켜고, 폐는 산소를 원하며 찌부러지고, 이윽고 수면에 얼굴을 내밀고 숨을 쉬는 것도 한순간뿐. 곧 다음 파도가 덮쳐든다. 도망칠 곳은 없다.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파도를 가른다. 포기하면 그야말로 끝장이라고 나 자신에게 되뇌면서 차례차례 덮쳐드는 파도를 넘어선다. 그렇게 해서 언젠가 문득 꿈처럼 고요해진 먼바다로 나가 기다리는 것이다. 이윽고 닥쳐올 나만의 파도를. - P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