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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저녁 - 2023 대한민국 그림책상 수상작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아, 이 작품은 꼭 연극 무대에 올렸으면 좋겠다, 라 생각했다. 시각적으로 무대 위 볼거리가 풍성할 것이고, 등장인물들의 면면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극적이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어지는 구조도 확실하다. 단점이라면 이야기가 짧다는 건데, 그건 극작가가 알아서 살을 붙일 일이고.
이 짧은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버렸는가?
뜨끔.
#. 하루 동일 동동거리며 일을 하느라 양 발이 부어 꼼짝도 못 할 지경이다.
#. 이제 막 아빠와 엄마가 된 초보 양육자들은 갓난아기 수발하느라 정작 자기들 밥해 먹을 시간이 없다.
#. 나라고 집에서 노는 게 아닌데, 오늘도 남편은 야근이라고 돌아오지 않고, 마찬가지로 야근을 해야 할 처지인 나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두 아이의 입을 책임져야 한다.
#. 지금이 아니면 운동할 시간이 없다.
#. 반려묘가 내 옆에 붙어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
스마트폰이 일상에 가져온 변화는 눈이 돌아갈 정도이다. 배달 책자가 어느 틈에 스마트폰으로 들어왔고, 보다 스마트하게 주문에서 결제까지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한 뒤로 얻게 된 삶의 편의성을 말해 무엇할까. 여태껏 주방에 묶여 살던 주방 지킴이들은 해방의 기쁨을 누렸다.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 한 끼를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가야 했던 몸뚱어리도 편하게 소파에 누워 누군가 가져다줄 음식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른바 '코시국'을 거치며 더욱 공고히 다져진 배달 문화는 어린아이들마저 '오늘은 뭘 시켜 먹을까?'라고 말하게 만들었다. 좋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좋다. 좋긴 한데. 이 좋은 일 뒤에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 아닐까? 이 좋은 일을 위해 어떤 희생이 필요했는지, 이 좋은 일로 앞으로 또 어떤 희생을 견뎌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