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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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에미코 씨는 뭐랄까, 멋지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도 한마디로 말하자면 뭐랄까, 멋지다.

전작인 ‘퇴사하겠습니다’는 제목만 들어봤고 나머지 책들은 아예 들어본 적도 없다. 에세이 류는 원래 즐겨 읽지도 않는다. 그런데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의 서문을 읽는 동안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가득 들어찼다. 


목적 없는 삶.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삶. 

오직 그 자체로 즐거운 삶.





‘삶의 모든 색’에서 보았던, 노년이 되어 비로소 ‘마침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시간이 생’겨서 흡족해하는 어르신들의 미소가 떠올랐다. 누구를 위해서라거나 혹은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었을까.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그쯤 되면 내게 주어진 게 넉넉하다 못해 넘쳐나는 시간뿐이라는 거다. 피아노에 빠져 하루 두 시간씩 맹렬히 연습하던 에미코 씨가 손의 통증으로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을지 모를 위기에 빠진 것처럼, 날 위해 쓸 시간은 있는데 내 마음대로 움직여줄 젊고 건강한 육체가 없다. 하나를 보면 둘, 셋을 깨우치던 잘 단련된 뇌도 없다. A4 크기의 악보는 B4 사이즈로 확대해야 할 만큼 눈도 제구실을 못 한다. 나로 말하자면 더는 예전처럼 밤을 새우며 퍼즐을 맞출 수 없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눈이 급격히 침침해지고 흐려지는 게 느껴진다. 글을 읽는 속도도 예전만 못하다. 집중력이 떨어진 탓이다. 와, 좌절.


하지만 좌절한 채 멈추는 건 에미코 씨와도, 나와도 맞지 않다. 어차피 인간은 태어난 이상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나이가 들면서 잃어버린 것만큼 얻는 것들도 분명히 있다. 꼭 필요한 것은 어제와 오늘의 내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제의 나는 잊자. 오늘의 나, 내일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


피아노는 왜 칩니까? 연주회를 노리고?

그럴 리가. 즐거우니까요.


그림을 그린다고? 팔 거야? 화가가 꿈이었어? 전시회도 할 거야?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아무튼 내가 좋으니까.


하. 멋지다.

멋진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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