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기원전 443년에서 기원전 441년 사이에 초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한편으로는 아테네의 전성기에 해당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기원전 457년부터 10년 정도 보이오티아를 점령했던 아테네가 기원전 447년 코로네아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이를 빼앗기고, 이 지역에서 테바이가 다시금 부상하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테네와 테바이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테바이를 향한 아테네의 경계심이나 적개심 또한 커질 대로 커지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은 10년쯤 후인 기원전 431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폭발하게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쟁으로 알려져있으나, 그 이면에는 전쟁을 별로 달가워 않던 스파르타 왕을 부추긴 코린토스와 테바이의 역할이 더 컸다.(55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대 그리스와 무덤 숭배

고대 그리스인들이 무덤을 숭배한 이유는 공동체 의식 함양, 국가 위상의 강화, 영토 및 영역의 표시 등 여러 배경이 있었겠으나, 특히 일종의 부적과 같은 기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각 폴리스의 수호신들은 물론이고, 영웅들도 자신의 성소나 유골이 있는 도시와 나라를 돕고 그곳 거주민들에게 봉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영웅들의 유골을새롭게 발견해낸다든가, 다른 곳에서 이장해 와서 무덤을 만들고 숭배한다든가, 유골이 없을 경우는 영웅을 모시는 사당이나 성소를 세우고, 각종서사시, 도기화 등으로 대신하는 사례가 많았다. 거꾸로 한 나라가 다른어떤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수호신이나 영웅을 회유하거나, 혹은 그들이 자기가 수호신으로 있는 나라를 보호하지 못하도록 그들 의 성소나 유골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절차가 필요했다.(5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늦게, 기원전406년경 소포클레스가 죽기 직전쯤 쓰였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 공연은 죽은 다음인 기원전 401년에 이루어졌다. 극의 배경이 되는 콜로노스는 아티카의 한 지역으로, 소포클레스 자신의 고향이기도 했다.(45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바이, 그리고 오이디푸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436년에서 433년 사이에 공연된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의 가장 위대한 모범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찾았고,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이를 소재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용어를 만들어 오이디푸스 이야기는더욱 유명해졌다. (4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자컴퓨터에서 모든 원자들은 일제히 동일한 모드로 진동해야 한다(이것을 ‘결맞음coherence’ 상태라 한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외부의 간섭이 조금이라도 개입되면(예를 들어 옆 건물에서 누군가가 재채기라도 하면) 원자들이 제멋대로 진동하는 결어긋남decoherence 상태로 돌변하고, 양자컴퓨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다. 양자컴퓨터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유는 결어긋남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307/75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