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말 그 해 겨울. 합격자 명단을 같이 보았던 아버지와의 추억. 아버지가 사 주신 소고기 메뉴.

시험이 끝나고 터벅터벅 교문을 걸어나가는데, 익숙한 얼굴이 웃으면서 나를 불렀다. 아버지였다. 만나자는 약속도, 기다리겠다는 약속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에서 우연처럼 만났다. 그 많은 수험생과 그 많은 학부모들과 그 넓은 대학 캠퍼스의 교문 앞에서 어긋나지도 않고 엇갈리지도 않고. 나중에 생각하니 신기했다. 휴대폰은커녕 호출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그 앞에 언제부터 서 있던 것일까. 시험은 어려웠고, 고사장을 빠져나오는 내 미래는 비관으로 가득했지만 교문 앞에 서 있던 아버지를 본 순간, 그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날마다 보는 아버지가 그보다 더 반가웠던 적이 있을까.(201-202/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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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모든 부모의 심정이리라

어떤 사랑이든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은 홀로 나선 길을 바라보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 그 길 앞에 서 있는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그 용기가 함께했으면 좋겠다.(204/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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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number)와 인문학(liberal arts)

생각해보니 수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내 말은 틀린 것 같다. 삶의 조건에 필요한 어떤 수는, 인간과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가령 인건비는 단순히 비용이 아니라 삶을 지불하는 거라는, 서로 다른 기회 조건이 이룬 성취를 똑같은 잣대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고민의 수. 그런 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경제학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왠지 기업가들은 마이너스의 수, 노동자들은 플러스의 수라고 부를 것만 같다.(195/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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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어려울 때, 마음이 정체될 때, 옴짝달싹할 수 없게 이것이 내 삶의 바닥이다 싶을 때, 섣불리 솟구치지 않고 그 바닥까지도 기어이 내 것으로 움켜쥐는 힘, 낮고 낮은 삶 사는 우리에게 부디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199-200/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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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게 참 묘하다. 눈을 뜨면 날마다 새로운 날이지만 실상 삶의 관성은 어제를 포함한 기억 속에 있다. 살아봤던 시간의 습관으로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더듬어가는 것, 현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거인 그런 게 삶이라는 생각도 든다.(169/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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