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사유하는 글쓰기를 가르치겠다는 강의실 안에서 오히려 가장 인문학과 거리가 먼 인간이 바로 나였다. (179/298p)
육체노동과 배움
그래서 얼마 전, 어떠한 다짐을 새롭게 했습니다. 이후 어떠한 삶을 살든, 몸이 허락하는 적당한 ‘육체 노동’을 반드시 하며 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지금의 성찰이 그저 일시적 감정에 그치지 않도록, 값싼 자기만족이나 허울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노동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뒤늦게나마 글이 아닌 몸으로 배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155-156/298p)
노동, 그리고 성찰
그런데, ‘노동’에는 사람을 ‘성찰’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타인에 대한 어떠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또 다른 나를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저에게 내재된 어떤 원초적 욕구’였던 것 같습니다.(156/298p)
친구
허벌과 나는 맥주 두 잔씩과 과일 안주 한 접시를 먹고, 다시 작별했다. 영수증에는 만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는 기약이 없고, 서로 힘든 삶을 살아갈 것도 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버텨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 글을 허벌을 위해 쓴다. 그가 계속해서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고, 그의 정원에 나를 초대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89/298p)
경계인
나는 반(半)사회적인 인간이다.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듯한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반(反)사회적인 인간이다. 다른 노동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 표면적으로 노동하고, 사회가 원하는 소득과 소비 기준, 그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한다.(77/29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