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공부만 잘하면 다 용서되는 학력주의자와 공부를 잘해도 가난하면 용서가 안 되는 계층주의자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 가끔 농담처럼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지금은 둘 중 누가 더 많을까. 누가 더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가난해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본이 꿈을 제한하는 사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265/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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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이 아니라도 좋아! 그렇지만 하면 좋고! ^^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끝내 1등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고 또 한다고 해서, 언젠가는, 결국, 모든 것을 성취할 수는 없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과정 아닌가. 1등 안 해도 돼! 나는 화면에 대고 소리를 쳤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바로 옆 레인에서 물살을 가르고 있는 내 아이에게도 해줄 수 있을까. 너에게는 너만의 속도가 있으니, 그 속도에 맞춰 살라고, 조금 져도, 늘 져도 괜찮다고, 과연 말해줄 수 있을까.(219/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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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말 그 해 겨울. 합격자 명단을 같이 보았던 아버지와의 추억. 아버지가 사 주신 소고기 메뉴.

시험이 끝나고 터벅터벅 교문을 걸어나가는데, 익숙한 얼굴이 웃으면서 나를 불렀다. 아버지였다. 만나자는 약속도, 기다리겠다는 약속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에서 우연처럼 만났다. 그 많은 수험생과 그 많은 학부모들과 그 넓은 대학 캠퍼스의 교문 앞에서 어긋나지도 않고 엇갈리지도 않고. 나중에 생각하니 신기했다. 휴대폰은커녕 호출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그 앞에 언제부터 서 있던 것일까. 시험은 어려웠고, 고사장을 빠져나오는 내 미래는 비관으로 가득했지만 교문 앞에 서 있던 아버지를 본 순간, 그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날마다 보는 아버지가 그보다 더 반가웠던 적이 있을까.(201-202/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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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모든 부모의 심정이리라

어떤 사랑이든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은 홀로 나선 길을 바라보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 그 길 앞에 서 있는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그 용기가 함께했으면 좋겠다.(204/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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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number)와 인문학(liberal arts)

생각해보니 수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내 말은 틀린 것 같다. 삶의 조건에 필요한 어떤 수는, 인간과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가령 인건비는 단순히 비용이 아니라 삶을 지불하는 거라는, 서로 다른 기회 조건이 이룬 성취를 똑같은 잣대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고민의 수. 그런 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경제학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왠지 기업가들은 마이너스의 수, 노동자들은 플러스의 수라고 부를 것만 같다.(195/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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