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 유한하다고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일상이 더 소중해졌고, 그림과 글쓰기가 그래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매일 스쳐 지나가던 편의점이 유의미해졌고 매일 다니던 골목이 좋아졌다. 모든 일상을 관찰하게 되면서 발견한 신비하고 오묘한 삶의 모습에 적잖이 감동을 받기도 했다. 오래된 추억의 장소를 그릴 때면 그때의 이야기가 떠올라 아련함으로 울컥하기도 했으며, 평범한 나무 하나를 그리다가도 그림이란 게 어쩜 이렇게 인생을 닮았을까 하는 생각에 뭉클했던 적도 많았다. 생의 한 컷과 한 줄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쌓이면서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역사가 되었다. 감춰졌던 삶의 모습들이 드러나면서 덤으로 삶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5
그림과 글은 마음을 부지런히 쓰는 일이다. 그래서 정신 건강에 딱 좋은 운동법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그리려면 마음이 움직여야 하고 글을 쓰기 위해 의미를 찾게 되면서 마음을 뒤적거려야 하기 때문이다. 육체의 건강만큼 정신 건강도 잘 챙기려면 더 그리고 더 쓰는 쪽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이나 글이나 무용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꽤나 유용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6
녹록하지만은 않은 우리의 일상에 응원을 얻으면 더 좋겠다. 그래서 우리 일상의 모든 것들이 꽤나 소중해지는 작은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7
사람, 나무, 자동차를 그린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것들은 외워서 그린다. 구구단 같은 거다. 일종의 치트키Cheat key라고 할 수 있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13
수채 물감으로 채색을 한다. 물이 길을 만든다. 수채 물감이 그 길을 따라 흐른다. 물이 마르면 종이에 흔적이 생기는데 이게 수채화다. 시간을 잘 써야 한다. 수채화는 시간이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14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꽤나 인생을 닮았다. 에둘러 빨리 가려 애쓰지 말고 차근차근 순서를 지키는 건 그림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꽤 쓸모 있는 거라는 걸 그림 그리면서 배운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15
그림은 근심을 멈추게 한다. 머리와 손이 집중을 하니까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다.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으로부터 떨어져 있게 된다. 근심은 생각을 먹고 자라는데 그림 그리기는 이런 근심이 자랄 수 없는 완벽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19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에서 고흐도 같은 말을 했다. "왜 그림을 그리나요?" 친구인 닥터 폴이 묻는다. 고흐가 이렇게 말한다. "생각을 안 하려고요. 생각을 멈추면 그제서야 느껴져요. 내가 안과 밖 모든 것의 일부라는 걸요."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20
작품명: 생명나무 TREE OF LIFE 반복되고 겹쳐 있는 무한한 수의 선들은 생명의 순간을 표현한다. 수많은 선들이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밝음’과 ‘어두움’의 굴곡이 만들어지는데 이건 마치 우리의 인생을 닮아 있다. 특히 깊고 짙은 어둠을 거칠게 생채기처럼 표현했다.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상처는 오히려 잘 살고 있다는 증명일 게다. 저 짧은 하나의 획이 사람의 희로애락 중 하나라면 결국 ‘생명’은 이런 희로애락의 얽힘으로 만들어지는 ‘나무’ 같은 것이 아닐까?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35
‘안목眼目’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멋진 걸 보는 눈’이다. 흔한 일상의 장면 중 어디의 무엇을 봐야 아름답고 멋진지 찾을 수 있는 눈이다. 그림은 안목을 배우기에 좋다. 뭘 그려야 하는지 찾아야 하니까 눈이 엄청 바쁘기 때문이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46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마찬가지. 익숙함이 무심함이 되지 않도록 살피는 자세가 필요하다. 으레 스쳐갔던 많은 것들에 진심이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행여 익숙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매일 다니는 길에서 길을 묻듯 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55
정겨움에 대해 생각한다. 후미진 골목의 무질서한 너저분함이 오히려 사람 같아 정겨운 거 아닐까. 반듯하고 자로 잰 듯 사는 게 어쩌면 참 매력이 없다는 생각을 줄곧 한다. 뭐 그렇게 까칠하게 살고 있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골목같이 정겨운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부터 정겨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59
어련히 할 수 없는 건 마음 근육도 마찬가지. 마음 근육은 손 근육만큼이나 처음이 어설프다. 처음 접하는 어떤 감정에 노출되면 마음 근육은 일단 어리바리해진다. 마음이 어련히 받아 노련하게 대처하면 좋으련만 나이를 먹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마음 근육도 단련과 연습의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 그 감정으로부터 떨어져 시간을 가지거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으로 단련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68
심장에 굳은살 박일 만큼 중년이 됐지만 작은 상처에도 아파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건데도 아직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파르르 떤다. 잘 아는 길에서 길을 잃고 길을 묻는다. 나는 아직 어린애.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70
무 용無用.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김희성의 대사에서 ‘무용’이라는 단어가 자꾸 생각났다.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꽃, 별, 웃음, 농담, 이런 것들." 낭만은 무용한 걸 굳이 하는 것이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쓸모가 없어도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했던 ‘김희성’만큼의 낭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들어 없어질 꽃을 선물하는 일이나 집 앞의 꽃을 보면 될 것을 굳이 차를 타고 멀리까지 가서 보고 오는 일, 안 보면 그만인 별을 보려고 대관령 험준한 곳에서 추위를 견디는 일에 적어도 밥이 나오느니 떡이 나오느니 핀잔을 준다거나 쓸모없다고 종지부를 찍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리다가, 뭉클>, 이기주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c2b01aeb2b4dbb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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