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는 숨이 막혔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깃털처럼 혀끝을 간질이는 진실을 내뱉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확실히 클레어는 형편없는 거짓말쟁이였다. 너무 조급하고 서투르고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조금이라도 성공을 기대하려면 말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 P189

그러자 회상으로 본 상황이 좀 더 분명해졌다. 생강촉새는 무정하기 짝이 없는 아빠를 사랑했다. 아빠가 그저 끔찍하기만 한 부모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차라리 아주 몹쓸 아빠였다면, 생강새도 그런 비난쯤은 좀 더 쉽게 흘려들었을 텐데.
사랑하는 이가 던진 잔혹한 말은 영혼을 파고들어 가장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는다. - P205

"그러니까 내 말은 누구나 사랑을 받을 수 있지만, 사랑을 줄수 있는 건 착한 영혼뿐이라는 거야." - P226

사랑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클레어는 주위 세상에 깊은 사랑을 느꼈다.
버섯들은 클레어의 벗이었다. 책은 가족이었다. 차는 열정이었다. 일은 삶의 목적이었다.
생강촉새의 말이 진실이라면,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돌보는 것도사랑이라면, 결국 나도 착한 영혼인 걸까? - P227

클레어는 그 말을 다 믿는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지금껏 스스로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시선을 하루아침에 거둘 순 없었다. 하지만 생강촉새는 진심으로 믿는 것 같았고, 그 믿음이 클레어의 가슴속에 작은 온기를 불어넣었다. - P232

클레어는 아직 떠도는 영혼의 길잡이다. 운명을 그 주인과 이어 주는 고리이다. 영혼이 곤경에 처했다면, 돕는 게 클레어의 일이다. 그리고 아이는 이생을 떠나도 아름다운 사후 세계의 품에서 잘 지낼 테지만 엄마의 영혼은 그러지 못하리라는 걸 클레어는 제삼의 눈으로 선명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 P298

이 이야기는 죽음을 다룬다.
또한 사랑을 다룬다.
하지만 조용한 책장 구석구석에서 말없이 탐구하는 것은 상실이다. 목적의 상실. 믿음의 상실. 삶이 (또는 죽다 만 삶이) 어떠해야한다는 기대의 상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결국 내려놓는 법을 탐구한다고도 할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붙잡는 법을 탐구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한 기억을 아주 살짝이라도 붙잡는 법을.
왜냐하면 친애하는 독자여, 상실은 슬픔보다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다. - P353

슬픔은 무게와 부피가 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울지도 모른다. 슬픔은 영혼의 가장자리를 짓누르며 형태를 바꾸어 놓는다. 슬픔은 비어 있지 않기에 채울 수 없다. 시간이 지난다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다만 슬픔을 짊어지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슬픔을 그대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익숙해질수록,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슬픔은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공간을 차지할 거다.
영혼이란 그래서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영혼에는 무한한 공간이 있으니까살다 보면, 더 많은 슬픔이 들어설 자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될지 모른다. 하지만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건, 더 많은 기쁨이들어설 자리도 있다는 거다. 두 팔 벌려 기쁨을 맞이하는 건 그대의 몫이다. 기쁨을 자꾸자꾸 맞이하다 보면 어느새 슬픔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거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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