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 나름대로 풍광을 감상하는 법이 있습니다. 마지막 1,442번째 계단을 올랐을 때 인파의 감탄이 눈앞의 어둠을 밀어냈습니다. 서늘히 불어오는 바람이 눈앞에 푸른 캔버스를 밀어다 놓습니다. 시리게 내리쬐는 햇살이 캔버스 위에서 부서지며 빛의 입자로 채색합니다. 저는 눈동자 속에 푸른 하늘과 하늘빛으로 빛나는 호수를 그립니다. 저는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생동감으로 기억하고 감상합니다. 천지 앞에서의 냄새, 웅성이던 사람들의 소리, 피부에 닿았던 공기의 질감. 낯선 감각은 새로운 자극이 되어 넓은 사고와 깊은 사유로 저를 이끕니다. 시력을 대신할 감각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에 저는 감사합니다.
-알라딘 eBook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조승리 지음) 중에서 - 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