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이 지우는 짧은 꿈을 하나 꿨다. 꿈속에서 지우는 제 앞의 빈 종이를 한참 응시했다. 지우는 뭔가 고민하다 손에 4B 연필을 쥐었다. 그러곤 오랜 시간 공들여 새를 그렸다. 어깨 힘을 이용해 대범하게 새의 윤곽을 잡고, 섬세하게 깃털 결을 살리고, 작고 까만 눈에 물기를 줬다. 언젠가 조류도감에서 본 솔새였다. 그런데 얼마 뒤 한 남자가 다가와 그 그림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기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개를 참 잘 그렸네.

-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8aec12f6c4e4c72 - P8

옛날 옛날에

세상에 자비도 없고 희망도 없고 노래도 없던 때

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첫날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좋아서.

그 밤을 덮고 자느라

세상에 인간은 있되

구원도 없고 기적도 없고 선의도 없다는 걸 잊었습니다.

첫날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좋아서.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편해서. -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8aec12f6c4e4c72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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