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왼쪽 귓속에서 온 세상의 개들이 짖었기 때문에
동생 테오가 물어뜯기며 비명을 질렀기 때문에
나는 귀를 잘라버렸다

손에 쥔 칼날 끝에서
빨간 버찌가
텅 빈 유화지 위로 떨어진다

한 개의 귀만 남았을 때
들을 수 있었다
밤하늘에 얼마나 별이 빛나고
사이프러스 나무 위로 색깔들이 얼마나 메아리치는지

왼쪽 귀에서 세계가 지르는 비명을 듣느라
오른쪽 귓속에서 울리는 피의 휘파람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커다란 귀를 잘라
바람 소리 요란한 밀밭에 던져버렸다
살점을 뜯으러 까마귀들이 날아들었다

두 귀를 다 자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멍청한 표정으로 내 자화상을 바라본다

-알라딘 eBook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지음) 중에서 - P9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알라딘 eBook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지음) 중에서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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