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위치를 경도와 위도로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게, 밤하늘에서의 위치는 적경과 적위로 표현한다. 적위는 지구의 적도면을 기준으로 한다. 북극성의 적위는 +90도, 지구 적도에서 머리 꼭대기에 있는 별의 적위는 0도다. 적경은 춘분날 태양의 위치인 춘분점을 기준으로 한다. 밤하늘에서 적경 0도, 적위 0도에 해당하는 지점은 물고기자리 근처에 있다. 별과 성운, 은하의 위치는 적경 적위로 표현할 수 있고, 항상 같은 위치에 있으므로 그 숫자가 변하지 않는다. 움직인다고 해도 너무 멀어서 우리가 보기엔 제자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해, 달, 행성과 소행성, 혜성의 위치는 적경좌표계 안에서도 변한다. 물론 무작위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각자의 궤도에 따라 성실히,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 별에 비하면 이들은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이웃이라서 그들의 움직임이 크게 보인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45
『종이달』의 리카가 처음으로 일생일대의 일탈을 저지르고 나온 날, 앞으로 도저히 되돌릴 수 없으며 스스로는 멈출 수도 없는 범죄의 눈덩이를 굴리게 될 미래의 기운을 막연히 감지하는 그 순간은 그믐달이어야 한다. 거대한 밤이 지나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돌아온 일상의 아침을 맞이하는 달이 초승달이라고 잘못 불리운 것은 아무래도 서운한 일이다. 그믐달이 그런 달이다. 다행히도 『종이달』의 우리말 번역본 표지에는 그믐달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48
여행자의 고향은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대단히 춥고 어둡다. 그곳에서는 태양계 생성 초기의 물질들이 섞여 꽁꽁 얼어붙은 채 동면 상태로 어슬렁거린다. 그러다 근처 다른 천체의 사소한 섭동攝動이 ‘넛지’가 되면 태양 근처로 향하는 궤도에 올라서게 된다. 추운 곳에서 시작한 여정은 점차 따뜻한 곳으로 이어진다. ‘더러운 눈덩어리’로 비유될 정도로 얼음을 많이 품고 있는 혜성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함께 포장해준 드라이아이스를 꺼냈을 때처럼 얼어붙어 있던 물질들이 기화되며 기다란 증기 꼬리가 생긴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53
혜성탐사선 지오토와 로제타를 통해 우리는 혜성이 메테인과 같은 탄소화합물을 풍부하게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혜성에는 다량의 물이 들어 있기도 하다. 소행성의 암석 속에서도 다양한 유기물질과 물을 찾을 수 있다. 태양계 초기의 열기가 한풀 가라앉은 뒤, 이제는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지구에 태양계 곳곳에서 물과 유기물질이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바다가 생겨나고 그 속에서 생명이 잉태되었다. 벌이 꽃밭을 날아다니며 수분하듯이, 혜성과 소행성, 그리고 작은 먼지 입자들이 지구에 생명을 가져온 것이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54
브라헤의 관측자료는 다음 세대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게 넘겨졌다. 브라헤의 관측기록이 어찌나 정교했던지, 그 자료를 분석한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행성은 태양 근처에서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태양에서 멀 때에는 느리게 움직이며, 공전 궤도의 장반경이 공전 주기의 3분의 2제곱에 비례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 세 가지는 ‘케플러 법칙’으로 불리며,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기본 규칙이 되었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61
빠르게 도는 팽이의 자전축이 천천히 변하는 것처럼 지구의 자전축도 약 2만 6000년 주기로 서서히 움직이는데, 이를 세차운동이라 한다. 세차운동 때문에 수백 년에서 천 몇 백 년 정도 지나면 별들의 위치가 천문도와 맞지 않게 된다. 거꾸로 말해, 천문도를 업데이트했다는 것은 대략 천년쯤 전에도 품질 좋은 천문도를 갖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중국, 일본에도 유사한 천문도가 전해지는데, 그 후예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것이 가장 정교하다고 알려져 있다. 별의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표시하고, 별들의 위치도 시대에 맞게 개정하는 등 우리 선조들은 천문도에 꽤나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68
그 생생한 공포의 끝자락에는 우울이 묻어나왔다. 갈 곳이 있어도 갈 곳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던 고등학생처럼, 폭주하는 고릴라 역시 거기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유인원사에 울려퍼지던 기괴한 포효 소리, 그 큰 덩치로 온몸을 유리벽에 던질 때마다 강한 진동으로 전해지는 쿵쿵 쾅쾅 소리. 나는 그 앞에 조금 비켜서서, 동물과 동물원과 세상살이와, 공포와 불안과 분노와 우울과 텅 빔과 쓸쓸함 같은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얻고, 또 많은 생각을 비워냈다. 쓸쓸함과 무시무시함이 교차하던 저물녘의 유인원사는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76
나는 고색창연하고 을씨년스러운 동물원을 좋아한다. 동물원은 쓸쓸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인류원’에 들어가 있다면 그럴 것처럼.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에 그런 사람이 나온다. 주인공 빌리는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트랄파마도어 행성의 동물원에 갇힌다. 지구의 인간 서식처를 그대로 재현했지만 화장실만은 완전히 노출된 공간에서 알몸으로 전시된 채로 먹고, 싸고, 씻는다. 수천의 트랄파마도어 관람객은 그의 몸을 관찰하고 그의 행동마다에 환호한다. 그들은 남성인 빌리와 합사시킬 여성 지구인을 하나 더 납치해온다. 빌리는 인공 서식처에서 ‘짝짓기’에 성공하고, 동물원 안에서 아이가 나고 자란다.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을 한껏 가련하게 여기면서도 자꾸만 찾아가서 기꺼이 관람객이 되는 나는 트랄파마도어에서 온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랑꾼이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76
선곡 과정에서 지구인들의 추천도 받았는데, 가히 지구 최강이라 할 만한 팬덤을 보유한 BTS의 곡이 일찌감치 우주 디제이의 목록에 올랐다. 단순히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아니었다. 많은 후보곡 가운데 〈소우주〉와 〈134340〉, 그리고 멤버 RM의 〈문차일드〉. 이렇게 우주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선택되었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88
2019년에 두번째 공모전이 열렸다. 이번에는 이름 지을 대상을 나라별로 나누어 투표를 진행했다. 우리나라에 배정된 것은 작은곰자리의 별 ‘8 Umi’와 그 주위를 도는 행성 ‘8 Umi b’였다.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이 보현산 천문대의 1.8미터 망원경으로 발견한 첫번째 외계행성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특별한 대상이다. 당신의 지갑 속 만 원권 지폐 뒷면에 나오는 바로 그 망원경이다. 요즘은 지갑에 현금은 없고 신용카드만 있는 경우도 많은데, 우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만 원짜리 한 장은 가지고 다니도록 하자. 소개팅에서 특별히 할말이 없을 때 이런 얘기하면 시간 잘 간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92
별이 움직이는 것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니 그 속도는 하루에 한 바퀴, 360도를 24시간으로 나누면 한 시간에 15도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단순한 계산. 천문학을 책으로 배운 내게는 그저 단위 환산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여러 숫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 돌고래가 내 마음속에서 뛰어오르기 전까지는.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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