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형 폐지론자니까. 말 나온 김에 생각해보니 전통을 파괴하는 사람들에게 죄를 묻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구나. 내 아들이 제일 먼저 법정에 서야 한다는 건 마음이 아프군. 사식은 잘 넣어주마. 오직 붕어빵으로만."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69

"붕어뿐만이 아니다. 물고기의 생명은 심장이 아니라 꼬리에 있다. 꼬리를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물고기의 삶이 결정되는 거야. 붕어빵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도 꼬리야. 꼬리부터 먹건 머리부터 먹건 꼬리가 모든 걸 좌우한다. 머리부터 먹는 사람의 달달해진 입안을 꼬리가 말끔하게 씻든가, 꼬리부터 먹으면서 바삭한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든가."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74

"쳇, 그런 식으로 갖다붙이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아버지, 타꼬야끼는 원형이죠. 모든 게 평등해요. 붕어빵이 갖는 불공평이 타꼬야끼에는 없어요. 일인 일표, 민주주의 아닌가요? 어디서부터 먹더라도 공평하고 동일한 맛, 그게 타꼬야끼의 철학이라고 말하겠어요. 아, 또 편집 생각나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75

얼굴도 예쁘고 가슴도 큰 여자도 있겠지만, 장사를 몇년째 하면서 얼굴이 예쁘고 가슴도 큰(뽕 같아 보이지 않는) 여자는 두명밖에 본 적이 없고, 둘 다 타꼬야끼를 사지 않았다. 그러니 모든 걸 갖춘 여자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얼굴도 못생기고 가슴도 없는 여자는 타꼬야끼를 사지 않는 남자와 마찬가지다. 여자들도 키 작고 얼굴 못생긴 남자들을 ‘남자’로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76

웃고 있는 문어가 그려진 여섯알짜리 종이상자를 꺼내고, 굴리기송곳으로 타꼬야끼를 찍어 착착착착착착 순서대로 여섯알을 올리고, 그 위에 파슬리 가루를 살짝 치고, 카쯔오부시를 한움큼 토핑하고, 마요네즈 쏘스와 간장 쏘스를 가볍게 뿌렸다. 아, 당신은 너무 뜨거워요. 카쯔오부시가 녹아내리며 말했다. 아, 이 달콤한 맛.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78

그녀의 얼굴은 긍정적으로 보면 귀엽다고 할 만했다. 대신 가슴이 예쁘게 컸다. 타꼬야끼 스무알을 합친 것 같았다. 타꼬야끼 서른알 이상짜리는 거의 없고 열알만 되어도 평균 이상이었다. 대부분 타꼬야끼 다섯알짜리였고 한알보다 못한 여자도 종종 보였다. 스무알 그녀는 이틀에 한번씩 타꼬야끼를 사러 왔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77

가슴만 훌륭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발랄한 아가씨다. 여자 손에 들린 타꼬야끼의 카쯔오부시는 아까 전에 춤을 멈췄다. 여자는 그제야 나무꼬치로 타꼬야끼를 찍었다. 나는 멍하니 타꼬야끼가 그녀의 입으로 들어가고, 그녀가 입을 오물거리며 타꼬야끼를 천천히 씹고, 입술에 붙은 카쯔오부시 한 조각이 살짝 하늘거리고, 타꼬야끼가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세상에, 타꼬야끼를 먹는 모습이 섹시할 수 있다니. 가슴이 커서 그런가?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80

손가락이 가늘고 긴 걸 보니 타꼬야끼에서 가장 중요한 굴리기송곳을 다루기에 적합해 보인다. 좋다. 손가락이 길면서 손바닥이 너무 넓어서도 안된다. 손바닥이 너무 넓으면 회전을 줄 때 손목에 조금씩 무리가 가고 타꼬야끼를 오래 구울 수 없다. 일종의 직업병이랄까. 타꼬야끼를 반드시 구워야만 하는, 타꼬야끼를 위해 타고난 손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좋은 손에 속했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87

인생은 실전이다. 요리도 실전이다. 따라서 인생은 요리와 같고, 요리는 인생과 같다. 인생과 요리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많은 연습이 있다면 실전을 더 잘 치를 수 있다. 많은 연습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많은 연습을 할 수 있는, 몇번쯤 연습을 해도 좋고, 연습을 망쳐도 되는 인생은 타고나야 한다.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기실 실패해도 괜찮거나 성공했거나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91

재료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근본을 중요하게 여긴다. 대체로 정직하며 성실하지만 원리원칙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93

기술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현실주의자다.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읽을 수 있고 뭐든 빠르게 배운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93

순박하거나 아주 약은 사람들은 정성이라고 대답한다. 가장 이상적인 답안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타꼬야끼가 정성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아무리 정성이 좋으면 뭐하나, 재료가 나쁘거나 기술이 부족하면 맛있는 타꼬야끼가 될 수 없는데. 게다가 이 정성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자신감이 낮고, 겸손한 편이다.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결과가 그리 좋지 않다. 가장 위대한 장인이거나,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대답이라고 알려져 있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94

"아닙니다. 특제 쏘스나 특별한 재료를 반죽에 섞어 개성을 갖는 가게들도 있습니다만 제가 말한 차이는 그게 아닙니다. 타꼬야끼의 차이는, 타꼬야끼 한알 한알이 갖는 차이를 말합니다. 높고 낮음도 아니며 강하고 약함도 아닙니다. 차이는 차이입니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95

"여섯알의 타꼬야끼 맛이 모두 같다면, 그 타꼬야끼는 평범한 타꼬야끼가 되고 맙니다. 한번에 여섯알을 먹을 때, 이때 타꼬야끼는 여섯알이 하나이면서, 한알 한알이 서로 다른 타꼬야끼이기도 합니다. 여섯알이나 한알이나 모두 타꼬야끼이지만, 한알 한알의 맛이 미묘하게 다르다면 다른 종류의 타꼬야끼 여섯알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96

한시간 후, 세번째. 현지의 헝클어진 머리에 땀이 묻어 있었다. 세번째를 마치고 나자 현지가 항복을 선언했다.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는데.
"사부, 더이상은 못하겠어요. 제발 좀 쉬어요."
"아까는 기세등등하더니, 겨우 이 정도야?"
"이럴 줄은 몰랐죠…… 너무해요, 사부. 이건 거의 고문이라구요."
"처음에는 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126

치이지칙. 불판 위에 놓인 삼겹살이 비명을 질렀다. 삼겹살 세줄을 얹고 양파를 올리고 나니 김치를 올릴 자리가 없었다. 김치를 집어들었다가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놓았다. 미안하다 김치야. 다음 세상에는 삼겹살로 태어나거라. 최소한 양파라도 되렴.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149

"사부, 불행이라는 글자의 앞뒤를 바꾸면 행불이 되죠, 그쵸? ‘불’ 자의 ‘ㅜ’를 뒤집으면 행볼이 되고. 강제로, ‘ㄹ’에서 ‘ㄷ’ 부분을 버리면 그제야 ‘행복’이 완성되는데 조금 뒤집고, 조금 버리고 나면 불행이 행복으로 바뀔 수 있대요. 억지스럽다구요? 억지스럽지만 바꿔보는 것과 자연스럽게 그냥 내버려두는 것 중 어느 게 더 행복할까요. 제 이야긴 아니에요. 어디서 읽은 거예요."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157

선을 봤다. 여자가 물컵을 들었다가 그대로 내려놓아서 안도했다. 터덜터덜 돌아오니 편지가 와 있었다. 편지를 받아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 무슨 고지서인 줄 알았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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