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 왜 거리를 두는 것에 이렇게 익숙한지, 왜 모든 것이 멀게만 느껴지는지, 왜 삶이 뜬소문처럼 느껴지는지."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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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평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나는 시인 벤 러너Ben Lerner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가 서로의 글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따금 이메일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 경우 ‘관심이 있다’는 표현은 약간 축소해서 말한 것이다. 나는 그가 후세대에 나타난 내 도플갱어라도 되는 양 집착한다. 우리는 둘 다 브라운 대학을 다녔고, 스페인에서 산 적이 있고, 유대인이다. 나는 그처럼 토피카*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캘리포니아 북부 교외 지역에서 자라는 것도 캔자스 주에서 자라는 것 못지않게 오즈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둘 다 작가이자 ‘비평가’이다. 우리는 둘 다 재주가 많은 어머니와 그보다 좀더 몽상적인 아버지를 갖고 있거나 가졌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둘 다 ‘언어와 경험의 통약불가능성’과 우리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느끼는 괴리 때문에 괴로워한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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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은—무릇 진지한 책은 다 그런 법 아닌가?—진정한 절망의 소산이다. 애덤/벤은 자신의 시가 "하고많은 자살 유언장"에 불과한 게 아닐까 싶어서 고민한다. 현실이 영원히 예술을 대체한다면, 그는 수면제를 병째 삼키고 말리라. 그가 시를 믿을 수 없다면, 그는 영업을 접으리라. 자네도 나도 그래야겠지, 친구.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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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차 역을 떠나며》는 "우리 시대의 풍토병, 즉 감정을 느끼는 것의 어려움을 기록한 책"인데, 이 완벽한 표현은 예전에 어느 비평가가 내 완벽하지 않은 책에 대해서 했던 말이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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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딴 사람의 시각에서 자기 자신을 보면 어떨지 끊임없이 궁금해하며, "나는 자기를 내려다보는 나 자신을 올려다보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방관자"라고 상상한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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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험이 언어, 기술, 약물, 예술에 의해 늘 매개되는 마당에, 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 시는 필수적인 예술 형식인가, 아니면 그저 독자의 생각이 투사되는 스크린인가?
이 두 문장은 러너의 책 날개에 적힌 광고 문구에서 가져왔다(틀림없이 러너가 썼을 것이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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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어로 말할 때 좀처럼 적당한 단어를 선택하지 못하고, 스페인어는 알아듣지 못하며, 오역은 모든 잘못된 소통에 대한 한없이 풍성한 은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즐겁게 여긴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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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증의 불행한 점은—내가 지금 벤의 나이 때 낸 자전 소설 《죽은 언어》의 소재가 말더듬증이었다—그것 때문에 내가 사랑, 미움, 기쁨, 깊은 고통처럼 전통적이고 진정코 중요한 감정을 표현할 때조차 자의식을 완전히 떨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항상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먼저 인식하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더듬지 않고 표현할 최선의 방법부터 생각하다 보니, 내게 감정이란 남들에게나 속하는 것, 세상의 행복한 소유물일 뿐 나로서는 솔직하지 않은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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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가을, 나는 샌프란시스코 만을 떠나 로드아일랜드 주의 프로비던스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나는 프로비던스가 말 그대로 프로비던스, 즉 신의 섭리와 같은 곳, 천사 같은 영혼들이 북적이는 천국 같은 도시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로드아일랜드는 말 그대로 섬일 것이라고, 동부 해안의 이국적인 끄트머리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브라운 대학은 폐쇄된 낙원일 것이라고, 그곳에서는 강인한 남자아이들이 눈밭에서 럭비를 하고 그 후에는 너무 오래되어 문을 닫을 수도 없는 대리석 도서관에서 가스등에 비추어 러스킨을 읽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새카맣고 풍성한 머리카락, 멋진 몸매, 뛰어난 정신을 소유한 여자아이들이 아침 식사 자리에서 괴테를 (나는 ‘고에스’라고 발음하는 줄 알았다) 논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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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애시버리의 시는 우리에게 안 보이는 곳에 감춰져 있는 것 같다. 시는 거울의 반대쪽 면에 쓰여 있고, 우리는 그 반사된 상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상을 반사함으로써, 애시버리의 시는 우리로 하여금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체에 주의하게 하고, 자신의 경험을 경험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기묘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것은 시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들을 손상시키지 않고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다. 왜냐하면 진짜 시는 여전히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 거울의 반대편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갖고 있지만 갖지 못한다. / 우리는 그것을 아쉬워하고, 그것은 우리를 아쉬워한다. / 우리는 서로를 아쉬워한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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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물 밑에 쓰인다. 벤은 아무것도 할 말이 없고, 작은 전화기에다 대고 아무 할 말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왜 거울과 거울 사이에서 태어났을까? 그보다 스물세 살 더 먹은 나도 정확히 그렇게 엉망진창이다. 내가 이 책에서 묻고 싶은 질문은 이렇다. 내가 벗어날 길이 있을까?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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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 여섯 살인가 일곱 살에는 춤추는 핫도그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몇 편 썼다(프로이트 박사를 호출해야……). 고등학교 때는 작가란 곧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했는데, 다만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였던 부모님은 오히려 반면교사였다. 나는 부모님을 ‘좌절한 작가’들이라고 여겼다. 희망이 유예되면 마음이 병드는 법. 부모님 또한 스스로를 그렇게 여겼다. 부모님은 그다지 쓰고 싶지 않은 기사를 꾸역꾸역 씀으로써, 이런 표현이 옳을지 모르겠지만, 입에 근근이 풀칠을 했다. 부모님은 ‘진짜배기 작가’, 즉 책을 쓰는 이들을 숭배했다. 헨리 로스Henry Roth. 호텐스 칼리셔Hortense Calisher. 저지 코진스키. 릴리언 헬먼. 나는 책을 쓰고 싶었고, 숭배 받고 싶었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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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유효한 주제는 하나뿐이다. 인생이 당신을 실망시킬 것이라는 사실." _ 로리 무어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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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포드 매독스 포드의 《훌륭한 군인The Good Soldier》, 귄터 그라스의 《고양이와 쥐》, 존 놀스의 《분리된 평화》를 떠올려보라. 나는 내가 행동하는 인간형이 아니라 작가인 것이 좋으면서도 싫다. 그래서 나는 언어에 사로잡힌 반쪽짜리 인생을 찬양하다가 결국 모독하고 마는 글들을 쓴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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