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미디어가 권력을 만드는 세상이다. 즉 시청률이 권력이 되는 세상이다.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PD는 과거의 건축가가 했던 역할을 하는 중요한 권력 창출자다. 앵커맨은 화면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큰 권력을 갖는다. 손석희 앵커같이 시청률이 높은 뉴스의 앵커는 이 시대의 중요한 권력자다. 이들도 고대의 신전 꼭대기에 서 있는 제사장과 같다. 권력이 생겨나면 함께 따라오는 것이 중독이다. 권력에 취한다는 말이 있다. 연예인들이 인기가 내려갈 때 힘든 것은 이러한 권력의 중독에서 벗어날 때 생기는 금단현상 때문이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특히나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권력은 찰나성이 더욱 심하다. 우리는 건축과 미디어를 통해 권력을 만드는 법을 안다. 이제 더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을 어떻게 잘 분배해서 균형을 맞추고 상호 견제하게 만드느냐다. 그리스는 인류 역사 최초로 객석과 무대로 구성된 극장을 만듦으로써 시민사회를 완성했다. 지금은 우리 사회를 한층 더 성숙시킬 수 있는 새로운 건축 장치가 필요한 때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01
건축에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해 주는 특별한 장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계단’이다. 계단을 살펴보면 우선 재미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다. 지리적으로는 그리스부터 잉카문명까지, 시기적으로는 수천 년의 건축 역사 동안 계단 한 단의 높이는 대략 18센티미터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02
계단은 고관절, 무릎, 발목, 발가락이라는 신체 관절 부위를 가지고 직립보행하는 인간이 좁은 면적 안에서 다른 높이의 공간으로 가기 위해 고안한 장치다. 인체 모양이 극단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계단의 모양과 크기는 유지될 것이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02
건축가 지오 폰티는 계단은 두 개의 다른 공간을 연결해 주는 멋진 건축 요소라고 말했다. 계단을 올라가면 걷기만 할 뿐인데 우리의 키가 자라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반대로 내려갈 때는 줄어드는 체험도 하게 된다. 계단 위에서는 우리의 눈높이가 계속 바뀌는데, 눈높이의 변화는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10
이제 미국인들은 밴더빌트가 깐 기찻길 위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밤에는 록펠러가 공급하는 등유로 램프를 켜고, 카네기가 만든 강철로 세운 고층 건물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때 새로운 사업가가 등장하는데 바로 현대식 금융을 만든 J. P. 모건이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18
이제 미국 국민은 포드가 만든 자동차에 록펠러가 만든 휘발유를 넣어 달리고, 카네기가 만든 강철로 지은 고층 건물에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 후 저녁에는 모건이 만든 발전소 전기를 이용해 에디슨이 만든 전구를 켜고 지내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20
프랭크 게리라는 건축가가 있다. 그는 종이를 구긴 것 같이 생긴 이상한 모양의 건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으로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은 낙후된 도시 빌바오를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문화 도시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게리가 비정형 디자인을 하는 이유는 유년 시절에 물고기를 쳐다보며 놀았던 기억 때문이다. 명절 때 요리를 하려고 대야에 담아 놓은 살아 있는 물고기를 보면서 그 역동성과 햇빛에 반짝거리는 비늘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역동하는 비정형의 건축을 만들기 위해 수십 년의 실험적 세월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곡면을 만들기 위해 종이를 잘라 붙여 보기도 했고, 이후 철판을 리본처럼 잘라 엮어 만들다가, 최종적으로는 자동차 제작 기술을 접목해서 곡선형 철판의 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건축물을 디자인할 때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인 ‘카티아’는 전투기를 디자인할 때 쓰는 소프트웨어다. 디자인이 끝나면 자동차를 만들듯이 강철 프레임을 만들고 차체를 만들듯이 철판을 프레임에 부착하여 곡면을 완성한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의 기술 지원이 없었다면 게리의 건축은 아직도 종이 모형에 불과했을 것이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22
이처럼 최초의 문명은 건조기후대에서 시작되었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북으로 북으로, 비가 오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29
한옥의 형태는 형이상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필연적인 이유로 나온 디자인이다. 우선 농경 사회에서는 수확한 벼를 탈곡하고 각종 작업을 할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운데 마당을 두고 주변으로 집을 지었다. 우리 조상들 집의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지 않다. 한옥의 마당은 정원이 아니라 작업장이기 때문이다. 당시 구할 수 있는 주요 건축 재료는 나무였다. 달구지 같은 교통수단과 노동력으로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의 규모는 지금 우리가 보는 한옥의 좁은 변의 길이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 정도 크기의 나무만 숲에서 마을로 가지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큰 나무를 가져올 수 있었다면 더 큰 건물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운반도 어렵고 가져왔다 해도 크레인 같은 기계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의 힘만으로는 통나무를 들어 올려 큰 보를 만들기 어려웠다. 겨우 대들보 정도만 제일 큰 나무를 사용했고 엄청 고생해서 지붕 높이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전통 건축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식을 대단하게 기념하는 것이다. 대들보를 올리는 것이 당시 공사 과정 중에서 제일 힘든 일이어서다. 많은 방이 필요하면 기둥을 한 방향으로 이어서 옆으로 길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33
우리나라는 집중호우가 많이 내리는 몬순기후이기 때문에 연강수량 1천 밀리미터 이상에서나 가능한 벼를 재배해서 쌀을 주식으로 삼는다. 장마철처럼 비가 많이 오면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벽돌을 한 장씩 쌓는 조적식 벽을 세우기가 어렵다. 그래서 건축물은 최대한 가볍게 지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거운 돌보다는 가벼운 나무를 주자재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무는 물에 젖으면 썩는다. 우리 전통 건축의 디자인은 나무를 물에 젖지 않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나무 기둥은 하부가 물에 잠겨서 썩지 않게 주춧돌 위에 세웠다. 땅이 습하니 마루는 땅에서 들린 높이에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청마루는 디딤돌을 밟고 올라간다. 나무 기둥이 비에 젖어서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서까래를 길게 뽑아서 처마를 만들었다. 지붕의 코너 부분의 처마는 대각선상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처마보다 더 길어진다. 이 코너 부분을 ‘추녀’라고 한다. 처마의 길이가 길다 보니 그림자는 더 깊게 드리워진다. 그런 이유에서 코너 부분을 받치는 나무 기둥이 물에 젖으면 그늘에서 마르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처마를 들어 올리는 디자인을 해야 했다. 처마의 끝이 올라간 것은 코너의 나무 기둥에 햇볕이 더 들게 하기 위한 디자인이다. 남쪽으로 갈수록 해의 입사각이 높아져서 위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처마는 더 급하게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보다 위도가 낮은 동남아시아 지역 지붕의 추녀는 더 급하게 올라간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처마의 곡선은 낮아진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34
도시와 건축의 진화는 주어진 기후 속에서 문제 해결을 하는 지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환경의 변화는 삶의 형식을 바꾼다. 바뀐 경제, 정치 구조는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만든다. 새롭게 만들어진 건축 환경과 도시환경은 다시 사람을 바꾼다. 바뀐 사람은 다시 정치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조직을 바꾼다. 이는 다시 건축과 도시와 주변 자연환경을 바꾼다. 전체적으로 그 규모와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35
당시 문자는 극히 일부 특권층의 권력의 근원이었다. 당시는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전이었고, 책들은 모두 필사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서 일반 대중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일례로 성경책 한 권의 가격은 작은 농장 열두 개 정도의 가격이었다. 책을 만드는 일은 대부분 수도원에서 했고 성직자들과 일부 귀족만 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종교 집단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극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성경책 대신에 공자와 맹자의 서책들이 그 역할을 했다. 옛 선현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양반들만이 권력에 접근 가능했던 것이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47187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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