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이나 말투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뛰어난 위원들 모두가 예외 없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다. 먼저, 분쟁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다. 당사자들이 겉으로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과 속으로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 것은 다를 때가 많다. 체면상 또는 전략적 허세(블러핑)로 목청을 높이고 있을 때 슬쩍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제3의 대안을 제시하면 못 이기는 척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심리학이다. 사람의 마음을 잘 파악하는 능력인 것이다. 이것은 눈치이기도 하고, 거창하게 말하면 콜드 리딩(신체 언어, 억양 등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기술)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69

다음으로는 적절한 카리스마다. 양쪽 말을 끝없이 들으며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한다고 분쟁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적절한 시점에는 조정위원이 생각하는 합리적인 타협안을 자신 있게 제시하여 흔들리는 당사자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 경청 과정에서 얻어낸 조정자에 대한 신뢰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70

마지막은 인내심이다. 뛰어난 조정위원들은 일단 타협안에 접근했다가도 금세 다시 물러서는 당사자들의 변덕에 화가 날 법한데도 끈기 있게 다시 처음부터 설득을 시작하곤 했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70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끌린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동료 인간이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라는 점은 미래에도 유지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기계가 발전해도 인간은 대체불가능한 자원일 수 있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75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은 비극이다. 역사의 두 측면을 있었던 그대로 직시하면서도 얼마든지 지금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림자를 강조하기 위해 빛을 애써 지울 필요도 없고, 빛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를 외면할 필요도 없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83

이념 문제 아닌 것을 이념 문제화하는 강박증은 두 가지 점에서 위험하다. 첫째, 실제적으로 필요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각 방안의 장단점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따지는 머리 아픈 과정을 ‘우리 편의 주장인지 적들의 주장인지’로 광속 대체하는 반지성주의를 낳는다. 둘째, 삼인성호三人成虎. 몇몇이 떠들어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진다. 몇몇 소수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념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다보면 마치 이 사회에 진짜 심각한 이념 대립이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이 생긴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인류는 속을 만큼 속았다. ‘좌우자판기’를 철거해야 하는 이유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90

민주주의는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필요로 한다. 잘못을 은폐하는 문화는 투명성도 효율성도 침해할 뿐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92

인간사회는 참 묘해서 교과서처럼 정의가 늘 승리하지도 않고, 거기 앞서 무엇이 정의인지도 정의하기 어렵고, 분명히 선의에서 비롯한 정책이 오히려 사람들의 고통만 심화하기도 하고, 인간의 능력과 노력에는 슬프지만 많은 격차가 있고, 빈곤과 불평등에는 사회가 책임질 부분도 있지만,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이런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뭔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훼손되는 것일까? 결국은 직시할 문제와 모색할 해결책 두 가지가 있을 뿐 아닐까?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09

그런 내게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한 인간의 폭력성을 냉정하게 해부해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위안을 준 책이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다. 하버드대 교수인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이 책에서 인간이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왔는가를 인류사 차원에서 탐구했다. 이런 책이 좋다. 게으른 고정관념을 깨주는 책. 요약하면 인류의 역사는 원래 내내 끔찍이도 폭력적이었으므로 현재가 그나마 가장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이 폭력을 감소시킨 원동력인지를 분석한다. 묘하게도,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또는 철저한 비관에서 출발하면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내 지론과도 통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17

핑커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폭력을 감소시킨 결정적인 힘은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 즉 근대국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개인들은 국가를 만드는 사회계약을 체결했고, 국가가 폭력 수단을 독점함으로써 무정부 상태의 폭력으로부터 인민을 보호하게 된다. 상업의 발전 역시 중요한 요소다. 더 많은 교역 상대와 물건을 교환하게 되면 상대가 죽었을 때보다 살았을 때 내게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근대 이후 폭력적인 남성 문화에서 탈피하는 여성화, 공감의 범위를 넓히는 세계주의의 흐름도 평화를 촉진시켰다. 이는 결국 자유주의적 인도주의를 향해 가치 체계를 진화시켜온 이성의 힘이다. 이를 모두 종합하면 인류 역사가 밟아온 ‘문명화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19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보적이고 자유를 희구하는 민중’의 이미지는 지식인들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자유, 가치상대주의, 다원주의 등의 서유럽적 가치는 엘리트, 중산층들의 선호이고, 서민들은 윤리적 보수주의, 종교적 원리주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24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숨진 경찰관 아메드다. 샤를리는 나의 종교와 문화를 조롱했다. 하지만 나는 샤를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었다."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숨진 무슬림 경찰관에 대한 한 무슬림의 트윗이다. 끝 문장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앞의 문장들은 자신의 신앙을 조롱하는 행위에는 동의하지 않음을 분명히하고 있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27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구약성서엔 폭력적 차별적 요소가 많지만 근대 계몽적 인도주의에 적응한 현대 기독교는 이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예를 들며 종교는 인간사의 지적 사회적 흐름에 반응한다고 분석한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28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은 합리적 추론보다 도덕적 직관에 의존하는데, 미국 진보 세력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달시킨 도덕성 중 자유와 배려에만 치중하고 정당한 권위, 고결함, 소속 집단에 대한 충성심은 무시해 지지 세력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대의 도덕감정을 모욕하는 것보다 상대도 공감할 만한 부분을 넓혀가는 것이 현명하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28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지구상 행복지수 최상위의 국가이면서 과학기술, 경제력, 정치 민주화 등 모든 측면에서 뛰어난 국가들, 이민 가서 살아보고 싶은 나라들은 전부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고 있는, 근대적 민주주의의 기반 위에 복지국가 원리를 실현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독일 등(여기에 사회문제 많은 미국이 왜 끼는지는 뒤에 다시 얘기해보도록 하자).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30

일조량, 자연환경, 지정학적 조건 등은 생각 이상으로 인간사회의 많은 것을 좌우한다. 복지 정책으로 인해 사람들이 무력증에 빠져 북유럽의 자살률이 높다는 순진하기까지 한 주장보다는 연간 일조량, 기후 때문에 그렇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계절성 우울증은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으니까 말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33

북유럽사회의 그림자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수입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내는데다 물건 가격에 붙는 부가세 같은 간접세도 높아 결국 모두가 비슷비슷 검소하게 살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대박이나 야심, 화려한 성취 같은 것이 어려운 협동조합사회에 가깝다는 점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34

이런 주제를 잘 요약한 것이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는 대사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44

우리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한 집단주의 문화의 사회다. 나서는 걸 죄악시하고 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누가 뭘 잘했을 때의 칭찬보다 그가 뭐 한 가지 잘못했을 때 그러면 그렇지 하고 달려들어 돌팔매질하는 광기가 훨씬 뜨겁다. 당연히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책임을 맡지 말아야 한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45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어떤 통속적인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아래 대사를 듣고 그 통찰력의 깊이에 놀란 일이 있다.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Dare to be an optimist.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46

앞의 글에서 얘기했듯 우리 사회처럼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전문가가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면서 체계적으로 사태를 수습하기가 어렵다. 그때그때 책임만 회피하려는 미봉책이 난무하기 쉽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51

슬로빅에 따르면 일반인이 체감하는 위험도는 양적 지표보다는 결과의 끔찍함 정도, 자신의 지식 범위 밖에 있는 미지의 정도,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 수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고 한다.* 치사율이 높다고 알려진 신종 전염병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한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52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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