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 말없이 서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미세한 떨림을 볼 수 있다. 소리는 떨림이다. 우리가 말하는 동안 공기가 떤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의 미세한 떨림이 나의 말을 상대의 귀까지 전달해준다. 빛은 떨림이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시공간상에서 진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은 가시광선밖에 볼 수 없지만 우리 주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전자기장의 떨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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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사진은 마음을 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심장을 울리고, 멋진 상대는 머릿속의 사이렌을 울린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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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은 이 책에서 진동의 물리를 설명할 때 등장한다. 진동은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리현상이다. 공학적으로도 많은 중요한 응용을 갖는다. 따지고 보면 전자공학의 절반 이상은 진동과 관련된다. 이공계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의 대부분이 진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동은 떨림이다. 비슷한 말이지만 그 느낌은 다르다. 진동은 차갑지만, 떨림은 설렌다. 진동은 기계적이지만 떨림은 인간적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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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인문학의 느낌으로 물리를 이야기해보려고 했다. 나는 물리학자다. 아무리 이런 노력을 했어도 한계는 뚜렷하다. 그래도 진심은 전해지리라 믿는다. 내가 물리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설렘이 다른 이들에게 떨림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울림은 독자의 몫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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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이후 38만 년쯤 지났을 때 수소, 헬륨과 같은 원자들이 생겨났고, 이때부터 빛도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이전에는 빛과 물질이 한데 뒤엉킨 어떤 ‘것’이 있을 뿐 빛은 홀로 존재할 수 없었다. 이때 탄생한 빛은 지금까지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다. 이 빛을 우주배경복사라 하며, 그 발견에 노벨물리학상이 주어지기도 했다. 우주는 38만 살 되던 해, 자신의 모습을 빛에 남겨 놓은 것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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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운동법칙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지만, 빛을 제대로 연구한 서양의 첫 과학자이기도 하다. 진동수가 다른 빛은 굴절하는 정도가 다르다. 이것을 ‘분산’이라고 한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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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파동이다. 파동은 진동이 공간으로 전파되는 것이다. 목에 손을 대고 소리를 내보면 그 떨림,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소리도 파동이다. 즉, 빛은 소리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소리는 진동수에 따라 음이 달라지고, 빛은 진동수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아주 느리거나 빨리 진동하는 소리는 인간이 들을 수 없다. 이런 소리를 초음파라고 한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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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의 고유진동수로 그 물체에 진동을 가하면 진동이 엄청나게 증폭된다. 이것을 ‘공명共鳴’이라 한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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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라디오의 채널은 고유진동수를 가진다. 방송사에서는 각 채널에 고유한 진동수의 전파를 내보낸다. 라디오의 채널을 돌리면 라디오 수신기의 고유진동수가 바뀐다. 그러다 특정 채널의 고유진동수와 라디오 수신기의 고유진동수가 일치하면 공명이 일어나서 그 채널의 신호만을 수신하게 된다. 사방에 모든 방송국의 전파가 있지만 라디오 수신기와 공명을 일으킨 채널의 방송만 나오는 이유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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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빠르다. 빛의 속도는 시속 10억 8,000만 킬로미터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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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가 되면 간섭계라는 정교한 장치로 빛의 속도를 측정하게 된다. 오늘날 빛의 속도를 정확히 재는 방법은 빛의 파장과 진동수를 각각 측정하여 곱하는 것이다. 이것은 빛의 파동이 한 번 진동하는 동안 이동한 거리(파장)를 한 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진동수의 역수)으로 나누어준 것과 같다. 이제 빛의 속도는 더 이상 측정의 대상이 아니다. 충분히 정확하다고 생각하여 299,792.458km/s로 정해버렸기 때문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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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물질이 우주에 가득한데, 아직 그 정체를 알 수 없어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라 불린다. 빈 공간의 어둠은 예외로 두더라도, 이런 암흑의 유산이 우주 전체 물질의 96%를 이룬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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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물리의 대상이 되는 것도 없는 걸까? 우리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도 여기에는 여전히 무엇인가 있고, 또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 공간이 있고 시간이 흐른다. 공간과 시간을 인지하는 것은 특별한 훈련이 없어도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인간이 선험적으로 갖는 인지구조라고 보았다. 우주가 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틀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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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빅뱅의 이론적 기반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빅뱅,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이 한 점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을 수학적으로 풀었을 때 가능한 답의 하나에 불과하다. 놀랍게도 이 이론은 시간과 공간 그 자체를 다룬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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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시간과 공간의 의미는 상당히 실용적이다. 시간이란 시계로 읽은 두 사건 사이의 간격이다. 공간이란 자로 읽은 두 지점 사이의 거리다. 이 정의에는 시간과 공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들어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시간과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기술하는 물리량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니까.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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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시간이 길어지고 길이가 짧아진다. 정지한 사람이 움직이는 사람의 시계를 보면 자신의 시계보다 느리게 가는 것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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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시간과 공간이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 시간도 점차 길어지고 공간도 점차 짧아지게 되는데 이것은 시공간이 휘어진 것과 같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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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은 시공간의 기학적인 모양을 기술한다. 빅뱅의 순간 시공간은 ‘점’이라는 도형이 된다. 그러니 이 순간 시간도 생겨난 것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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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는 지구-태양 거리의 100만 배다.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은하에 가려면 지구-태양 거리의 1,000억 배를 가야 한다.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1,000억 개 있다. 이런 거대한 규모의 공간에서도 일상생활의 법칙이 적용될까?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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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시공간과 물질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시공간은 무대, 물질은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는 시공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연법칙이라는 대본에 따라 물질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연극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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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칸트는 그의 책 『순수이성비판』에서 우주에 시작점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정당화될 수 있어 이율배반이라고 했다. 우주에 시작점이 있다면 무한한 시간 가운데 하필 그 순간 시작했을 이유가 없고, 시작점이 없다면 모든 사건 이전에 똑같이 무한한 시간이 있어야 하므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즉, 이성으로는 답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우주의 시작점에 대한 질문을 과학적 탐구대상으로 만들었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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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은 연극무대와 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배우와 같다. 배우의 특성이나 움직임에 따라 무대의 구조가 매 순간 함께 바뀌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은 물질과 마찬가지로 기술되어야 할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제 시공간의 변화, 나아가 시공간의 시작과 끝을 묻는 것이 가능해진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7212 - P39

1920년대 조르주 르메트르는 상대성이론에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수학적 가능성을 찾는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말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한 점에서 출발했다는 뜻이니, 우주에 시작점이 있다는 거다. 바로 빅뱅이론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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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경우 상대성이론이 팽창우주의 가능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방정식에 ‘우주상수’라는 것을 억지로 집어넣어 우주의 팽창을 막기도 했다. 훗날 자신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라고 했지만 말이다. 사실 스티븐 호킹의 중요한 업적의 하나는 블랙홀과 빅뱅 같은 특이점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 <떨림과 울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7212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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