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한참 기쁨의 고뇌를 겪고 있던 그대를 루 살로메가 보았다. 흥분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고 날카로운 이성을 지닌 정열의 슬라브 여인은 그대 앞에 머리를 조아렸고, 위대한 순교자여, 지칠 줄 모르며 귀를 기울였다. 그대는 그녀에게 영혼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고, 조금도 만족하지 못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대의 영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냈다. 그대가 그토록 믿으면서 마음을 털어놓고, 여자들이 자극하는 열정과 혼돈과 창조력을 누리며, 묵직한 갑옷 밑에서 부드럽게 마음이 녹아내림을 느끼는 것이 얼마 만이었던가! 그날 저녁 고행자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삶의 공기는 여인의 향기로 인해 처음으로 향기로웠으며, 그대는 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영혼의 자서전 (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79

열렬한 눈 돌려 당신이 잡으면

누가 감히 뿌리치리오?

당신에게 잡히면 나는 영원히 날지 않고

당신은 파괴만 할 뿐이라곤 믿지도 않으려오.

세상의 모든 것 당신이 거쳐 가니

당신이 손대지 않은 것 세상에 없다오.

당신이 없으면 삶이 아름답겠지만

당신 또한 살아갈 가치가 있다오.

영혼의 자서전 (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80

오, 이 고독감,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별! 그렇다, 이런 순간들을 나는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 경험하지 않으리라, 그대는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영원 회귀의 폐쇄된 순환 속에서 구원의 문을 열어야만 한다.

영혼의 자서전 (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81

새로운 희망이, 새로운 씨앗이, 초인이 그대의 몸속에서 솟구쳤다. 초인은 세상의 목적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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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81

당시에 배교자 바그너가 그의 새로운 작품에서 시도했듯이, 그리스도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귀족 사회의 미덕과 투쟁의 힘으로, 인간 자신의 힘으로. 인간은 초인을 잉태할 능력을 갖추었다. 영원 회귀가 그대의 목을 조였다. 초인은 삶의 공포를 쫓아 버릴 새로운 키마이라[4]였다. 이제는 예술이 아니라 동력(動力)이었다. 오, 돈키호테여, 그대는 신을 풍차인 줄 알고 그를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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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82

「신은 죽었노라.」 심연의 언저리로 우리들을 끌고 가서 그대가 말했다. 희망은 오직 하나,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초월하여 초인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면 우주를 다스리는 일이 모두 그의 어깨에 떨어지고, 그는 그런 책임을 수행할 권세를 얻으리라. 신은 죽었고, 그의 왕좌는 비었으니, 우리들은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으리라. 그러면 세상에는 우리들만 남는가? 주인은 죽었는가? 그렇다면 더욱 좋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신이 명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두렵거나 희망에 찼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일하고 싶기 때문에 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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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나는 파리의 밤나무들 밑이나 유명한 강가를 거닐 때면 내 옆에서 서성거리는 그의 그림자를 불현듯 느꼈다. 우리들은 해가 질 때까지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 그는 항상 숨이 찼고, 헐떡이는 숨결에서는 유황 냄새가 났다. 나는 그가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목구멍이 막혀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제 싸우지 않고 친구가 되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았고,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내 모습을 찾아냈다. 하지만 고뇌는 전염이 된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모든 고민을 주었다. 그와 함께 나는 짝짓기가 불가능한 짝을 짓게 하고, 가장 높은 희망을 가장 깊은 절망과 타협시키고, 합리성과 확실성을 초월하는 문을 열기 위해 투쟁했다.

영혼의 자서전 (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87

마찬가지로, 새벽녘에 종달새처럼 인간의 두뇌에서 솟아 나온 사상은 인간의 탐욕스러운 눈길이 닿자마자 육체를 뜯어먹는 굶주린 독수리로 변했다.

영혼의 자서전 (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92

비겁한 자와, 노예가 된 자와, 서러움을 받는 자로 하여금 위안을 얻어 주인 앞에 참고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들이 유일하게 확신하는) 현세의 삶을 인내하게끔 만들기 위해 내세의 보상과 벌을 심어 놓은 종교는 얼마나 교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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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92

현재의 삶에서는 하찮은 것을 내놓으면서 내세에서의 불멸이라는 재산을 주도록 알량하게 계산하는 주님의 계획서 같은 종교는 얼마나 약삭빠른가! 얼마나 단순하고, 얼마나 간악하며, 얼마나 인색한가! 그렇다, 천국을 바라거나 지옥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유로울 리가 없다. 희망의 술집이나 공포의 지하 술 창고에서 취하는 우리들은 부끄러운 존재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며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던가! 격렬한 선지자가 나타나 나로 하여금 눈을 뜨게 했다는 사실은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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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93

악마적인 교만의 산들바람이 내 이마를 스쳤다. 인간이 모든 투쟁과 모든 희망을 받아들이고, 신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으며 혼돈에서 질서를 끌어내어, 그것을 인간이 조화로 변형시킬 때가 왔다고 나는 불손하게 선언했다.

영혼의 자서전 (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93

나중에, 훨씬 뒤에, 나는 절벽의 언저리에 꿋꿋하게 서서 교만함의 기미도 없고 두려움도 없이 심연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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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199

부도덕하고 시끄럽고 어지러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질서 있고 조용하게만 살아간다면, 남자와 여자를 방으로 맞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규칙을 어기는 셈이다. 그는 용납이 될 수 없고, 용납이 되어서도 안 된다. 나는 평생 동안 줄곧 그것을 느껴 왔다. 내 삶이 항상 지나치게 단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위험할 만큼 복잡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하든지 그들은 거기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는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측면을 추측해 내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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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201

나는 파리를 떠날 터였다. 십자가에 매달리느라 생긴 손과 발과 옆구리의 상처들은 모두 아물었지만, 온통 피투성이에 반항심이 가득 찬 영혼이 대신 가슴속에서 솟구쳐 나를 무섭게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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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207

불확실성은 새로운 확실성의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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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208

천국에 관한 진실은 우리들이 죽은 다음에야 판단하게 될 텐데, 죽은 자의 나라에서 돌아와 우리에게 진실을 얘기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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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209

니체까지도 공포에 굴복했던 순간을 겪었다. 영원 회귀가 그에게는 끝없이 이어지는 순교로 생각되었으며, 두려움에서 그는 위대한 희망을, 미래의 구세주를, 초인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초인은 또 하나의 천국, 가엾고 불행한 인간을 기만하고 그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견디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신기루일 따름이었다.

영혼의 자서전 (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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