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은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안식처를 찾으려는 듯 다시금 호메로스에 빠져 들어갔다. 불멸의 시구들이 또다시 파도처럼 밀려와 내 관자놀이에서 부서졌다. 수백 년을 가로질러 나는 신들과 인간들이 창을 휘두르는 소리를 들었으며, 늙은 남자들에 둘러싸여 트로이아의 성벽을 천천히 거니는 헬레네를 지켜보면서 상념을 잊으려고 애썼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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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인간의 마음이 전능하여 죽음과 투쟁할 만큼 힘이 넘친다면, 만일 막달라 여자 마리아 ― 창녀 막달라 마리아 ― 처럼 사랑하는 시체를 부활시킬 능력을 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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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면 암말을 타고 이교도들을 공격해서, 밤에 싸움터에서 돌아와 기독교 세계의 적들이 썼던 피로 물든 터번을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성상 밑 우리 집 성상대에 걸었으리라. 그러면 아버지도 마음의 평화를 얻고, 나름대로 그리스도가 가슴속에서 부활함을 느꼈으리라. 누가 뭐라고 해도 아버지는 무사였고, 그에게는 전쟁이 구원을 전하면서도 받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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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충처럼 잉태하는 힘을 지닌 바람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어 형태를 갖추고, 태아를 만들어, 이제는 밖으로 나오려고 발길질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펜을 들어 글을 써서 배설하는 산고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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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밤낮이 지난 다음 연극 원고가 전부 내 무릎에 놓였다. 나는 갓 태어난 아기를 안는 어머니처럼 그것을 꼭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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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키만큼 땅에서 솟아오르는 밀의 줄기들은 무덤에서 소생하는 그리스도였고, 빨간 아네모네는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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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산과 들판을 산책하며 상상 속에서만 즐기지 말고, 팔레스타인의 따스한 몸을 만지고 보며, 그리스도가 숨 쉬고 밟고 만졌던 땅과 대기를 숨 쉬고 밟고 만지며, 인간들 사이에 그가 남긴 핏자국을 따르기 위해서. 그렇다, 나는 꼭 떠나아마도 팔레스타인, 그곳에서 나는 거룩한 산에서 헛되이 추구하던 바를 찾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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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아져서, 밤샘 동안에 레몬꽃으로 뒤덮인 신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고통을 겪으며, 먹지도 못하고, 잠자지도 못하고, 눈물도 가누지 못하는 행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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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소녀를 사랑해서 예수의 수난일 정오에 만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발에 입을 맞춤으로써 함께 경배하기로 약속했고, 신의 몸을 통해 여인과 입술을 마주 댄다는 죄를 범하는 기쁨 또한 더욱 크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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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신전은 거대한 벌집처럼 시끄러웠다. 그곳은 빛과 인간의 땀 냄새가 넘쳤고, 그리스도의 무덤에서 거룩한 빛을 뿜어 우주가 창조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신전의 둥근 천장 밑에서 밤을 보낸 남자들과 여자들의 하얗고, 갈색이고, 검은 겨드랑이는 땀에 젖었다. 어디에서나 밀랍과 썩은 기름의 시큼하고 짙은 악취가 풍겼다. 성상들 밑에서는 주전자의 커피가 끓었고, 어머니들은 젖을 꺼내 아기들에게 먹였다. 흑인 여자들은 머리카락에 양 기름을 발랐는데, 그것이 녹아내려 양 같은 냄새가 났다. 남자들은 숫염소의 참지 못할 악취를 몸에서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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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사랑을 나누는 영혼의 불멸한 언어를 속으로 노래하며 나는 사해(死海)로 가는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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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들 자신의 소돔과 고모라가 어떤 전능한 발에 짓밟힐 터이며, 신을 잊고, 비웃고, 흥청거리던 세상은 또 다른 사해로 변하리라. 모든 시대의 끝에 신의 발이 이렇게 와서 너무 포식한 배와 너무 발달한 이성의 도시들을 짓밟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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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는 서로 입 맞추는 두 명의 창녀처럼 강둑을 따라 누웠다. 남자들과 다른 남자들이, 여자들과 다른 여자들이, 남자들과 암말들이, 여자들과 황소들이 교미를 했다. 그들은 〈삶의 나무〉를 먹고 과식했으며, 〈지혜의 나무〉에서 과일을 너무 많이 따 먹고 과식했다. 성상들을 때려 부순 그들은 그것이 나무와 돌멩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고, 사상을 때려 부순 그들은 그것이 바람으로만 가득함을 깨달았다. 신에게 가까이, 아주 가까이 온 그들은 〈신은 두려움의 아버지가 아니라, 두려움의 아들이로다〉라고 말하고는 공포를 잊었다. 그들은 도시의 네 성문에 노란 글씨로 커다랗게 〈이곳에는 하느님이 없도다〉라고 써놓았다. 〈이곳에는 하느님이 없도다〉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우리들의 본능에 굴레가 없으며, 선에 대한 보상과 악에 대한 처벌도 없고, 은공과 수치와 정의도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들은 발정한 암컷 수컷 늑대들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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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 공기가 응결되는 듯싶더니 이마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수염을 휘날리며 사나운 맨발의 롯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구약에서처럼 노예 신분의 롯이 아니었다. 그는 도망쳐서 구원을 받으라는 신의 명령을 거역하려는 반항아였으며, 꿋꿋한 롯이었다. 그는 매혹적이고 죄 많은 도시들을 동정했고, 자유 의사에 따라 불 속에 몸을 던져 함께 죽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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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반항아가 어떻게 내 뱃속에서 튀어나왔을까? 무서운 일이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야만적인 영혼은 내 마음속, 신의 뒤,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나는 믿음이 깊고 순종하는 족장인 아브람과 함께였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를 저버리고, 성서를 짓밟고, 이런 롯을 창조하여 그와 하나가 되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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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을 찾아 나서면 안 되고, 그것이 당신을 찾아올 겁니다. 찾아올 테니 내 말을 듣고 마음을 편히 가져요. 언젠가 윗사람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답니다. 〈어느 수사가 평생 동안 신을 추구했는데,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야 그는 줄곧 신이 그를 찾아다녔음을 깨달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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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어릴 적의 열망과, 엉뚱한 예언들이 내 눈앞에서 시나이의 그림이라는 현실과 뒤섞였다. 내 머릿속에서 무르익던 숨은 결심이 갑자기 형태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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