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4년에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교회를 떠나 잉글랜드 국교회를 설립한 후 잉글랜드는 개신교 신앙을 수호하는 주도적인 나라로 인식되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51

프랑스와 스페인이라는 두 강대국들이 있는 세계에서는 잉글랜드가 생존할 수 있지만 하나일 경우에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65

헨리 8세 때 잉글랜드 국교회를 수립하면서 몰수한 수도원 재산이 해군 확장 기금으로 사용되었듯, 영국혁명 기간 중 해군 기금의 대부분은 몰수된 왕당파의 토지에서 나왔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69

해군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해법Navigation Act 제정이었다(1651). 항해법은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이 무역을 독점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크롬웰 정부가 그들로부터 무역을 빼앗아 오려는 목적에서 추진한 중상주의적인 보호무역 정책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70

결국 프랑스와 스페인이 한 국왕 밑에서 통일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게 만든 위트레흐트조약(1713)은 영국이 이 전쟁의 진정한 승자임을 보여주었다.*
 
*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중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병합하여 정식으로 영국, 즉 브리튼 연합 왕국이 탄생했다. 박지향, 『클래식 영국사』(김영사, 2012) 참조.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77

18세기를 통해 영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은 제해권을 둘러싸고 승부 겨루기를 했는데, 그 절정은 프랑스혁명 전쟁과 나폴레옹전쟁의 격동기(1793∼1815)였다. 이 겨루기에서 영국 해군은 압승을 거두었다. 누구보다도 결정적인 공을 남긴 인물은 말할 것도 없이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80

넬슨과 트라팔가르 해전은 영국 해군의 불패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으며 나폴레옹전쟁이 종결된 세상에서 영국은 어느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세상의 패권자였다. 그리고 영국 해군은 1920년대 미국 해군이 전함 수에서 그들을 앞설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94

그것은 정복자 로마인들 수가 원주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5세기에 로마가 떠나고 앵글로색슨 시대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잉글랜드의 왕권은 앵글로색슨의 전사들 무리와 더불어 시작되었는데, 5세기경 대륙으로부터 브리튼섬을 침략해 들어온 앵글로색슨 부족들은 9세기까지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군웅할거의 양상을 띠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91090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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