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 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 다 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고용주들에게 이 고다자 임계장들은 시급만 계산해 주면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없는 매력적인 노동력이다. 석 줄짜리 구인 광고를 내면 일자리를 원하는 노년의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고용주는이 중에서 "고분고분한 자, 뼈와 근육이 튼튼한 자"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7p)
나는 삶에 대해 낙관적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삶에는비상구가 있기 마련이고, 살고자 하면 살아남는 법‘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날들을 근심하지 않았고 노후에 대해서도 크게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직하자마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들이 연달아 돌출했다.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이라 믿어 왔던 삶의 비상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15p)
모든 일자리는 최저임금을 주는 단기 비정규직이었다. "급여는 상담 후 결정" 이라 적은 곳은 최저임금 이하로 준다는뜻이었다. 화물차 운전직은 구인은 많았지만 경력이 필요했다. 택배 기사, 대리 운전, 오토바이 음식 배달, 주방 설거지와 김밥 말기, 두루치기, 회 뜨기, 밤 까기, 북어포 다듬기 등은 할 수있을 것 같았지만 대부분 최소 1년 이상의 경력자를 원했다. "왕초보 환영" 이라는 곳은 주로 보험 관련 직종들이었다. 내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단순 노무직은 모두 "근골격이 좋으신분"을 요구하고 있었다. (18p)
"버스를 운행하려면 운행 노선 1개당 배차원과 탁송원, 이렇게 최소 두 명이 필요해. 우리 회사는 운행 노선이 한 개뿐이지만 경력이 30년 넘는 나도 혼자서 감당하기가 어려워. 근데당신네 회사는 운행 노선이 세 개 아니오? 아무리 적게 잡아도세 명이 필요한 건데 당신 같은 초짜가 배차랑 탁송까지 다 한다고? 어림없지." (25p)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저기 공동 화장실 가서 씻어요. 그 밥값으로는 수도 요금도 안 나와요. 배차 계장들이 무슨 밥을 저리도 많이 먹어 대는지 원." 그리고 숨기는 기색 없이 잔반을 상에 올렸다. 4000원짜리 밥을 먹는 몇 명의 군소 버스 회사 배차원들은 습관처럼 서로에게 물었다. (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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