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노력해도 없어지지 않은 통증에 대한 분노와 자신이 잘 살아왔다고 우기며 자신을 외롭게 만든 가족들에 대한 원망과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의사들의 원망에 쌓여있던 이반은 드디어 자신의 가장 가까운 주변, 가족을 보았고 그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관심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서 타인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감정이 생겨나고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는 표현을 한다.
그 때 비로소 그의 안에서 그를 너무나 괴롭혔던 무언가가 나가는 것을 느끼고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자 죽음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니라 빛이었고 두려움이 아닌 자유였다.
이 부분에서 이반이 느낀 큰 은혜의 파도가 내 안에도 밀려들오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영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 작가에게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얼마전에 읽었던 헤밍웨이의 <킬라만자로의 눈>이 생각났는데 거기선 죽음의 실제적인 섬뜩한 느낌을 강렬하게 느꼈다면 이 작품에선 삶 자체를 진지하게 돌이켜보면서 죽음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본 기분이다. 죽음은 결코 유쾌하지 않으나 결코 나와는 떨어질 수 없는, 언젠가는 반드시 내게도 올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만날 죽음을 미리 배우는 기분이다. 그래서 정말 좋았다.
'주인과 일꾼'은 돈에 집착한 주인이 눈보라가 치는 밤에 무리하게 이동해서 생기는 일이다. 눈 때문에 한 치도 더 가지 못할 정도로 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일꾼이 힘을 다해 주인을 모셨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자 일꾼을 어리석은 놈이라고 원망하고 늦게 가서 손해라도 볼까봐 전전전긍긍한다.
하지만 진짜 죽을것 같은 위험을 느끼자 그것이 머 그리 중요하겠나라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심지어 자신이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자 썰매와 일꾼만 버려두고 자신만 말을 탄 채 떠나기도 했지만 앞으로 돌진하다가 넘어지고 말은 도망가버린다. 겨우 그 말을 쫓아가보니 자신이 버려두고 온 썰매와 일꾼이 있는 곳이었다. 일꾼이 정말 얼어죽으려고 하는 것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털외투를 열고 그의 위에 엎드려서 자신의 체온과 털외투로 일꾼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한번도 느껴보지못한 특별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정말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었다. 그는 그렇게 처음으로 엄청난 행복을 느꼈고 그렇게 행복에 충만한 상태로 사망한다. 주인의 헌신 덕에 일꾼은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고 아침에 사람들에게 구조 된다.
자신의 이익과 돈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주인이 죽기 전에 이런 엄청난 은혜를 입다니! 정말 그는 큰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죽음 맞이할 때 어떤 상태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동화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지만 그만큼 마음의 따스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마지막 '세 목숨'은 톨스토이의 젊었을 때 쓴 작품이라고 한다. 젊은 귀부인의 죽음과 병든 마부의 죽음, 그리고 나무의 죽음을 의미한다. 끝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젊은 귀부인과 묵묵히 자신의 갈 길이라고 인정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마부의 모습이 무척 대조적이다. 병든 마부에게 새 장화를 받은 젊은 마부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그의 묘지에 세울 십자가를 만들기로 한다. 그래서 숲에 가서 도끼질을 하여 나무를 넘어뜨린다. 그 나무의 죽음은 무척 평화롭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처럼 보여져서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이반 이리치의 죽음>에서 톨스토이의 죽음의 관한 세 작품을 만났다. 분량이 길지 않았는데도 많은 양의 내용을 읽은 것처럼 마음이 꽉 차고 감동이 남았다. 이런 깊은 감동을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