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밀 졸라는 나의 절친의 <목로주점> 서평을 통해 처음 만났다. 친구의 관점에서 보는 글이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갖게 된 만남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 강렬했음!!

그 강렬함으로 왠만해선 에밀 졸라는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알퐁스 도데 단편집들을 만나자 그들과 계속 인연이 있었던 에밀 졸라가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그가 자연주의의 거장이라는 평들을 대하니 정말 이젠 그를 만나봐야겠다는 마음이 섰다.

그러던 중에 <패주>를 통해 드디어 에밀 졸라를 직접 만나게 되었다.

난 개인적으로 전쟁작품들은 좋아하진 않는다. 지리도 약하고 전술도 잘 모르고 너무나 거친 느낌의 그 장르는 솔직히 떙기지 않는게 사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대하다보니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단편집,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고 전쟁작품에 대해 나도모르게 친숙해지기까지 한 기분이다 ㅋㅋㅋㅋ 요런 상태에서 에밀 졸라의 <패주>를 만나게 되서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고 도데의 단편집의 배경이었던 같은 보불전쟁 이야기라서 더 내용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좋았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은 모리스와 장이라는 인물인데 모리스는 변호사로 한마디로 말해 젊은 지식인이었다. 반면 장은 시골 농부출신이라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무척 지혜롭고 우직하며 충성스럽다. 장은 하사이고 모리스는 그의 병사인데 초반엔 모리스가 자신같은 지식인이 무식한 농부의 명령을 따라야한다는 것에 무척 탐탁치 않게 여긴다.

하지만 장의 책임감이 있으며 의리있고 우직하며 참된 리더의 모습들을 보여주자 자신도 모르게 그를 존경하게 되고 그를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 모리스는 장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그를 형이라고 부르게 된다. 장은 처음부터 모리스를 지식인으로 대우해주며 자신보다 아래이지만 무척 존중해줬는데 그런 모리스가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형이라고 부르자 원래부터 그랬던것처럼 친 아우로 대해준다.

진짜 둘의 우정과 사랑이 얼마나 진한지.... 둘이 알게 된건 정말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죽음의 경계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니 친 혈육과 다름없는 관계가 된다. 실제로 둘은 상대가 죽음의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구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 그들의 사랑이 정말 감동적임...

반면, 본성이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는 자들도 있다. 특히 이렇게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많은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선 그런 본성의 힘이 더 큰 듯함. 여태 함께 자고 함께 먹으며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이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배고픔 때문에 이성을 완전히 버리고 그 동료를 무참히 살해하는 일도 일어난다. 그리고 뒤 늦게 현타와서 자신도 어쩔줄 모르는 상황에 빠짐 ㅠㅠ 너무나 안타깝다... 이런 극적인 상황이 사람들을 단체로 미쳐버리게 만들어 점점 괴물처럼 변함....

이런 광기어린 모습은 파리에서 난리치는 코뮌들의 모습을 통해 많이 보이는데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 느꼈던 단체로 광신도 집단이 되어 자신이 무슨짓을 저지르는지도 잘 모르는채 마구 죽이는 모습과 무척 오버랩 되었다. <두 도시 이야기>를 읽을 때 진짜 충격적이었는데 이번이 두번째라서 개인적인 충격은 덜했으나 그 미쳐 날뛰는 모습은 너무나 비슷했다. 정말 사람은 극적인 상황에 놓이면 정상적인 사고판단이 불가능해져버리고 자신들이 믿는 것만 답이라는 맹목적인 신앙에 갇혀서 같이 미친 괴물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특정 사람들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누구든 그 상황에 그 곳에 있다면 그렇게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이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느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열터지는 것은 많은 병사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사기가 꺾이고 어이없이 죽는데 그 이유는 명령권자들이 제대로 상황 파악하지도 못해 상황에 맞는 명령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금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라는 식의 완전 웃기지도 않은 바보 같은 명령이 난무함...

알퐁스 도데 단편선에 있는 <당구 게임>이 넘 생각이났는데 지금 밑에선 공격당해서 젊은 병사들이 개죽음 당하고 있는데 명령을 내려야하는 사령관이 당구 게임을 하느리 아무 명령도 내리지 않아서 패전하는 이야기이다. 진짜 이런 일이 이렇게 있었던 거지... 정말 리더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패망하고 개죽음 당하는지, 아무리 강조하고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는 교훈이다.

그렇게 독일한테 밟혀서 결국 항복을 하게 되었는데 그 상황에서 그 항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민자위대가 형성되어 반발한다. 그 와중에 독일에게 짓밟힌 자존심을 국민자위대를 깨부시는데 쓰는 프랑스 정부... 물론 이 자위대가 정상적이진 않았다. 그 무리도 너무 극단적이고 서민들을 괴롭혀서 비난받을만 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국민들인데 그들을 그렇게 까지 짓이겨야만 했을까...독일군에게 당한걸 자국민에게 분풀이하는것 처럼 보이는 프랑스 정부가 넘 한심하게 보였다.

에밀 졸라의 섬세한 묘사로 전쟁의 끔찍함이 정말 잘 표현되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것은 많은 생명들의 죽을 때의 모습보다 죽고 나서 그 시신들의 부패로 주변이 심각하게 오염되어지는 부분들이었다. 죽음의 끔찍함,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릴 때의 아픔들 못지 않게 죽은 사람들, 죽은 말들로 인해 생겨나는 전염병들도 엄청난 것이었다. 그 부분이 정말 강렬하게 와 닿음...

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개죽음을 당하고 온갖 것들이 파괴되고 정말 지옥이 따로 없어보이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이 끝난다. 이 부분을 읽는데 뿌옇고 어둡고 음침한 곳에 한 줄기 빛이 내려오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꿈꾸며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해 애쓰는데 그들이 있어서 더 나은 지금이 있었다는 게 와 닿아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패주>를 통해 전쟁의 해로운 점과 이로운 점 모두를 보여주며 우리는 더욱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알려준 에밀 졸라. 그의 메세지가 넘 공감이 되었고 다 잃었지만 다 잃은게 아님이 느껴지면서 허탈하지만은 않은, 가슴에 작은 씨앗이 뿌려진것 같은 이야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