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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ㅣ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 ‘박지원’은 학창시절에 무심결에 외운 ‘박지원의 열하일기’, 열하일기의 지은이였다. 열하가 중국의 지명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박지원은 나의 기억 저편에 짧은 두 단어로 남아있던 터에 이번 독서클럽의 토론주제로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선정되었다. 도서관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클릭했더니 이 책밖에 검색되지 않았다. 2주전에 이 책을 대여했으나 한동안 집안 책상 위에서 홀로 남겨져 있어야 했다. 그만큼 박지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틀 전 드디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읽어나가다 보니 ‘어! 박지원, 우울증, 체제를 거부한 당당한 아웃사이더, 생각보다 재밌는 인물이네, 음, 특이한 경력이군, 어, 어, 어.’ 하다가 박지원의 열혈 팬이 되었다. 아직 2장까지밖에 읽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내가 옳다구나! 동감한 부분은 연암의 우정론과 문장론에 대한 부분이다.
<우정론>
"벗이란 ‘제2의 나’다.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 하며, 입이 있더라도 누구와 함께 맛보는 것을 같이 하며, 누구와 더불어 냄새 맡는 것을 함께 하며, 장차 누구와 더불어 지혜의 깨달음을 나눌 수 있겠는가?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는 구할 수 없는 법, 그것은 존재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인 까닭이다." (p.65)
진정한 친구와의 교우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듯하다. 그들의 만남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절친그룹 백탑청연에는 당대의 최고 과학자인 담헌 홍대용, 석치 정철조, 서얼인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서자출신의 무인 백동수 등이 그들만의 우정을 쌓아갔다. 밤마다 모여 한쪽에선 풍류를, 한편에선 명상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모임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 광경인가? 그들은 맛을, 향을, 음악을, 감정을, 사상을 같이 공유했다. 부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p.64) 중국 명나라 이탁오의 말이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맴을 돈다.
<문장론>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을 수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글과 같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이 비록 오래되었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비록 오래되었어도 그 광휘는 날마다 새롭다. 책에 실려 있는 것이 비록 방대하지만 가리키는 뜻은 제가끔 다르다. 때문에 날고 잠기고 달리고 뛰는 온갖 생물 가운데에는 간혹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고, 산천초목에는 반드시 비밀스런 영(靈)이 있게 마련이다. 썩은 흙에서 지초가 나오고 썩은 풀이 반딧불로 화한다.” -초정집서(p.135)
그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문장에 생의 약동하는 기운을 불어넣을 것 인가였다.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 말하자면 글이란 읽는 이들을 촉발하는 ‘공명통’이어야 한다. 찬탄이든 증오든 공명을 야기하지 못하는 글은 죽은 것이다. (p.133)
글을 쓰는 사람이 염두에 두어야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