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 - 사회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25
이황직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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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계몽과 교육만이 나라를 살린 방책이라는 것을 11년간의 미국생활을 통해 분명히 깨닫게 된 서재필은 계몽과 교육을 통해 조선 국민 스스로 나라의 주인임을 자각하게 되는 그 순간, 저절로 나라는 바로 설 것이요 국력은 부강해질 것이라고 생각게 된다. 게다가 암송이 아닌 ‘연설’과 ‘토론’을 통한 새로운 교육 방법의 유효성을 깨닫고 1895년 귀국12월 25일 고국 땅을 밟는다.

그는 배제학당에서 강의를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토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깨우친 학생들은 협성회를 결성하여 공개토론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에 자극을 받아 독립협회도 토론회를 개최하고, 게다가 외세에 맞서 민중이 참여한 만민공동회를 열어 성공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서재필에 의해 100여년 전 이 땅에 토론의 장이 열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뜻하지 않던 서재필의 추방으로 이 땅의 토론 문화는 2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토론문화가 뿌리내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 때문일까?

상대방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자기주장만 앞세우고 상대방의 반박을 중간에서 끊고 얼굴을 붉히기 일 수인 토론프로그램이나 틈만 나면 몸싸움에 그렇지 않으며 졸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여주는 국회 상황을 보면 100여년 전에 이 땅에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토론의 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오늘날의 교육현실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교육현실은 가깝게는 몇십년 전 멀게는 몇백년 전 암기 위주의 교육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서재필은 이미 100 여년 전에 이미 연설과 토론이 새로운 교육 방법임을 깨달았는데도 말이다.

협성회와 독립협회에 의해 이미 100여년 전에 뿌린 내려진 우리나라의 토론문화를 발판삼아 이제는 민주적 시민성을 체화시킬 수 있는 참여의 장으로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지방의회에서, 국회에서 혹은 인터넷을 통해 제대로 된 토론의 장이 형성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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