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
노아 차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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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딘지도 모르는 전 세계 미술관 중 한 곳에 뚝 떨어졌는데, 어떤 사람으로부터 주변 미술품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상상해보자.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신감 넘치는 선언은 일반인들의 불안과 혼란을 정확히 포착하며, 미술 감상의 본질을 되짚어준다.

저자는 미술의 역사적 맥락을 새롭게 조명한다. "과거의 이론가들은 예술,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문명이란 기본욕구가 충족된 후에야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굴에서 살던 선사시대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먹고살고, 동물들을 따라다니고, 동굴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애쓰는 상황에서도 예술을 창조했다." 이를 통해 예술이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임을 강조한다.

미술 감상의 어려움 중 하나는 시각언어의 이해이다. "서양 전통 미술 작품을 잘 해석하려면 이 '시각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상징에 대한 시각언어는 유럽 미술과 그 영향을 받은 북미 지역에서 놀랍도록 일관되고 일정하게 등장한다. 정의라기보다 '한 쌍의 열쇠=성 베드로'처럼 일련의 방정식에 가깝다." 저자는 복잡해 보이는 상징 체계를 이런 방식으로 단순화하여 접근성을 높인다.

미술 용어의 장벽에 대해서는 유쾌한 비유로 접근한다. "미술의 세계에 입문하려면 우박처럼 쏟아지는 전문 용어를 용감하게 무릅쓰고, 그 용어들이 실제로는 전혀 무시무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박을 뚫고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한 후 폭풍우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미술 용어들을 "우박"에 비유함으로써, 그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은 극복 가능한 장애물임을 보여준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추상미술에 대한 "일정한 형식이 있는 미술품을 바라보는 일은 사실 수동적인 서사 읽기의 한 형태다... 그러나 캔들 박사는 일정한 내용을 표현하는 서사와 예측 가능한 시각 요소를 모두 제거한 추상미술을 볼 때야말로 두뇌가 적극적으로 문제 풀이를 해야 한다고 획기적인 주장을 한다." 이는 추상미술이 더 "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인 감상을 요구한다는 점을 말한다.

"어떤 작품을 보고 감동하거나, 작품을 전하기 전과 후로 다른 무엇인가를 느끼는가? 작품을 보기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가? 그렇다면 잘 만든 작품이고, 그 작품을 좋아해도 '안전하다'." 이 간결한 문장은 미술 감상의 본질이 지식이나 전문성이 아닌,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진정한 교감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예술과의 관계에서 자신감과 즐거움을 찾도록 안내하는 지혜로운 안내서이다. 노아 차니의 유쾌하고 명확한 언어는 미술이 결코 특권층만의 것이 아닌,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세계임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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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번 더 나은 실패를 한다 - 다자이 오사무의 이별계획 러너스북 Runner’s Book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이영서 편역 / 고유명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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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철학적 깊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자이의 문장들은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예술과 창작의 고통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어떤 역경이 있어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며, 그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죽는 것 역시 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오바스테'의 한 구절은 다자이가 평생 고민했던 생존의 문제와 죽음에 대한 유혹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보여준다.

'불새'에서 발췌한 "진실은 행위다. 애정도 행위다. 표현하지 않는 진실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은 다자이의 문학적 철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내면의 진실이 외부로 표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그의 견해는, 그의 작품이 왜 그토록 자기고백적이고 적나라한지를 설명해준다.

'나태의 가루타'에서 인용된 부분은 작가로서의 다자이의 고민을 보여준다. 위대한 러시아 문학에 비견될 만한 작품을 쓸 수 없다는 고백과 함께,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이 점은 대단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다자이의 모습은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인간관계에 대한 다자이의 통찰 또한 주목할 만하다. '철새'에서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타인의 괴로움을 잘 알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솔직해질 수 없습니다. 솔직하다는 것은 폭력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소통의 어려움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참새'에서의 "인간의 마음이란... 실제로는 더 희미하고 어렴풋한 것이야"라는 구절 역시 인간 심리의 모호함을 포착한다.

'사양'에서의 "내가 정말로 괴로워서 나도 모르게 신음을 냈을 때 사람들은 내가 괴로운 척한다고 수군거렸다"는 구절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둘러싸인 개인의 고립감을 드러낸다. 이 부분은 다자이가 평생 투쟁했던 자아와 세상 사이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사랑하고 있다. 그것이 내 고통의 시작이다(오바스테)"라는 구절은 다자이에게 사랑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사랑은 그에게 기쁨보다는 고통의 원천이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도 희생해야 한다"는 냉정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결코 찰나주의는 아니지만, 너무나 먼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까지 가면 전망이 좋다고 말한다(여학생)"는 구절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미래의 희망만을 강조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는 다자이가 평생 고통받았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반영한다.

그의 솔직하고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정직한 문체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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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음에는 이유가 있다
김아영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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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면 봄이 찾아오듯, 인생의 계절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김아영의 "모든 걸음에는 이유가 있다"를 펼치자 '돌아가더라도 우린 결국 닿을 거야'라는 부제가 먼저 와닿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은 망각일지도 모른다." 이 문장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잊어버렸기에 지금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지. 인간은 망각하면서도, 무언가를 갈구하는 모순적 존재입니다.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은 잠깐 피었다가 지나가는 무지개처럼 곧 사라진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 하며 살아왔던 내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모았던 인정이란 것이 결국 무지개처럼 사라져버리는 것뿐이었을까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생각했다. 무언가를 가질 수 있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우리 안에 지옥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실상은 하늘 위 구름 한 점 조차 옮길 힘이 없는 작은 인간일 뿐인데.


"복잡한 생각 없이 평안한 상태로 있을 수 있다는 것. 더 가지거나 덜 가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바로 그 평안이 곧 행복이라는 걸 너무 늦게서야 깨달았다." 읽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물질적 소유나 외적 성취가 아닌, 마음의 평안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닫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는 행복이 지속될 것이라 믿었지만, 삶의 굴곡을 경험하며 그렇지 않음을 배웁니다. 행복할 때면 이내 불안이 찾아옵니다. 이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까, 또다시 내리막길이 찾아오면 어떡하지. 하지만 어쩌면 그 오르막과 내리막이 모두 내 삶의 일부이고, 그 모든 걸음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평안을 찾아가는 여정. 돌아가는 길이라도, 결국은 내가 닿아야 할 곳에 닿을 수 있을 거라는 용기.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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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 - 무의미한 삶을 지탱하는 10가지 깨달음
마이클 노턴 지음, 홍한결 옮김 / 부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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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삶의 특별한 순간들을 갈망합니다. 여행, 승진, 결혼식 같은 이벤트들이 인생의 하이라이트처럼 느껴지곤 하죠. 하지만 마이클 노턴의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는 이런 관점을 뒤집어 놓습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오히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작은 행위들 속에 더 깊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노턴은 '리추얼(ritual)'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습관이 '무엇을 하느냐'에 초점을 둔다면, 리추얼은 '어떻게 하느냐'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매일 마시는 커피가 단순한 카페인 섭취가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내리고 음미하는 시간이 될 때, 그것은 이미 리추얼이 됩니다. 이 작은 차이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하루와 온전히 경험하는 하루를 구분 짓는 경계선입니다.

우리가 시간과 정성을 들인 것들에는 그만큼의 감정이 쌓이고, 이 감정은 삶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집니다. 매일 반복하는 행동들 속에 내 방식대로 시간과 정성을 들인 순간들이 하나씩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자기 자신과의 관계부터 가족, 사회적 관계까지 리추얼이 어떻게 우리 삶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감정 유발제'로서의 리추얼에 대한 설명입니다. "감정을 마음대로 불러일으킬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생일 케이크의 초를 끄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감정을 조율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웁니다.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는 삶을 더 나은 무언가로 '바꾸는' 방법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삶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나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붙잡고, 관계를 되살리고, 다시 나답게 살아갈 구체적인 연습을 제안합니다.

결국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날마다 반복되는 작은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입니다. 겉보기에는 같아 보이는 하루 속에서도,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 순간들을 음미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버티는 하루'가 아닌 '살아 있는 하루'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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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라. 그리고 타락하라. -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 러너스북 Runner’s Book 4
사카구치 안고 지음, 이준혁 옮김 / 고유명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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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은 "인간은 살고, 인간은 타락한다. 이것 외에 인간을 구원할 지름길은 없다"라는 문장에 집약됩니다. 그에게 타락은 부정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필수적 과정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전후 일본의 도덕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윤리적 지향점을 제시합니다.

예술에 대한 안고의 견해는 독창적입니다. "그것이 살아 있을 때 속악한 실용품에 지나지 않던 것이, 고전이 되었을 때, 예술의 이름으로 살아남는다"라는 구절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그의 통찰을 보여줍니다. 또한 "속된 사람은 속된 것에, 작은 사람은 작은 것에, 속된 그대로 작은 그대로 각자의 비원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립다"라는 표현에서 진정성을 중시하는 그의 가치관이 드러납니다.

사카구치 안고의 글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입니다. "사는 것만이 중요하다"라는 단언은 전쟁 이후의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죽은 사람은 그냥 사라질 뿐으로, 아무것도 없을 뿐이지 않은가. 살아내 보이고, 해내 보이고, 끝까지 싸워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구절에서 생의 강렬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고독과 평화에 대한 안고의 관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고독은 사람의 고향이다"라는 표현은 자아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평화를 추구한다면 고독을 추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면서도, "불안, 고통, 슬픔, 이런 것들이 나는 좋다"라고 말함으로써 내면의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사랑에 대한 안고의 통찰력은 예리합니다. "연애는 인생의 꽃이다. 아무리 지루하더라도, 그밖에 다른 꽃은 없다"라는 문장은 삶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또 서로 미워하는 게 당연하다"라는 말에서는 관계의 복잡성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드러납니다.

이 산문집은 형식적 도덕주의를 거부하고 인간 실존의 진실을 직시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타락이라는 역설적 과정을 통해 구원을 모색하는 사카구치 안고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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