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펨브로크 가는 길
이태형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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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길 위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랑자의 시선을 담은 시집이다.
'나의 집'은 방랑자가 찾아 헤매는 정신적 고향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석가모니와 예수라는 동서양 영성의 상징들, 비단구렁이의 원초적 생명력, 심해어의 고독한 빛과 같은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어우러져 '집'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확장한다. "벽도 울타리도 없으니 바람이 제집 넘나드는 듯"이라는 구절에서, 진정한 '집'이란 물리적 공간이 아닌 개방된 영혼의 상태임을 암시한다. 이는 《펨브로크 가는 길》이라는 시집의 핵심 주제인 '길 위에서의 자기 발견'과 맞닿아 있다. 방랑자는 역설적으로 정주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집'의 의미를 깨닫는다.
'달맞이꽃'에서는 여정 중에 만나는 사랑의 순간을 포착한다. "교교한 달빛이 부서져 내리고 나뭇가지마다 하얀 서리꽃"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마주하는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사랑은 저만치 미친 그리움"과 "달맞이꽃이 스스로 목을 맨다"는 표현은 여행자가 길 위에서 경험하는 찰나적 사랑의 아름다움과 상실을 달맞이꽃의 생애에 투영시킨다.
'인생'은 여정의 불확실성과 허무를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한다. "여우가 삼켜버린 고슴도치", "영원한 불시착"과 같은 이미지들은 방랑 중에 겪는 좌절과 실패를, "종점에서 권태가 긴 하품을 드리운다"는 구절은 인생이란 여행의 끝에서 마주하는 공허함을 드러낸다. 긴 여정이 때로는 무의미할 수 있다는 실존적 통찰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 속에서도 계속되는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어느 날'은 방랑자의 지속적인 움직임과 방향성에 대한 성찰을 담는다.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쪽이다"라는 구절은 동에서 서로 이어지는 보편적 여정을, "바람이 불어가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으나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다"는 방향은 있되 목적지가 불분명한 '길 위에서의 불확실한 자기 발견'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시집의 제목이 암시하듯, 중요한 것은 '펨브로크'라는 목적지보다 그곳으로 '가는 길' 자체일지 모른다. 여정의 의미를 다양한 감각과 사유로 탐색하며, 담백한 언어 속에 깊은 울림을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