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우리 - 고승의 환생, 린포체 앙뚜 이야기
문창용 지음 / 홍익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환생, 고승, 란포체, 티베트
그리고 동행...

언뜻 보았을때는 책의 성격을 가늠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아이 책이 아닌 '내 책'을 붙들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의 눈길도 책장 너머에 걸쳐있슴이 느껴진다.  

 

 

 

 

해맑은 소년의 말간 미소와
눈가가 촉촉한 노인의 깊은 표정이 대비를 이룬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동명의 영화가 개봉된 바 있다.  
영화의 영어제목은 'Becoming who I was'

책 제목이 우르갼과 앙뚜의 '관계'에 집중했다면
영화의 영어제목은 이들 관계가 최종적으로 향하는 바를 의미한다.

 

 

지은이 문창용은 방송과 영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우리가 충분히 알법한 프로그램들을 다수 제작했고,
상도 여럿 수상했다 한다.

그런 그가 책 속 주인공을 만나게 된 사연이 흥미롭다.
티베트 의학 다큐멘터리를 만들러 간 길에
의술을 펼치는 승려와 그의 제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다음해 두 사람을 다시 찾았을때
승려의 어린 제자는 란포체가 되어 있었다.

티베트 고승의 환생이 증명된 이가 바로 '란포체'다.

환생과 전생...
평소 관심있던 주제가 아닌데 내가 이 책에 빠질 수 있을까 염려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는 내내 각티슈의 휴지를
몇장이나 뽑았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책은 히말라야 산맥, 그 어디쯤인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해발고도 3,50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지역의 하나인
'라다크'는 인도 북부 잠무 카슈미르 주에 있는 지역으로
그 남쪽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다.

 

 

 

'파드마 앙뚜로'
이제 막 아홉살이 되었지만 이 아이는 평범한 동자승이 아니다.
'란포체'다.

 

 

 

 

 

 

 

라다크 사람들은 전생과 현생, 그리고 이후의 생이 실타래처럼 엮여서
하나로 계속 이어진다고 믿는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현재의 삶이 끝나면 모든게 끝이라고 여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도 전생이나 환생은
과거의 어떤 경험이나 이미지를 무의식속에 표출하는 것이라 여겨왔다.

그런데 앙뚜가 보여준 란포체로의 '증명'은 놀랍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앙뚜는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자신의 전생에 대해 얘기하였는데,

그는 전생에 티베트 동부 캄 이라는 지역의 고승이었다 한다.
그래서 캄 지역의 풍광에 대한 묘사나,
자신이 전생에 몸 담았던 사원의 생김새며
심이저 사원에 있던 은으로 된 컵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었다.

이런 증명이 있었기에
앙뚜는 란포체로 추앙받았었다.

 

 

앙뚜의 곁에는 노승 우르갼이 있었다.
본디 우르갼은 승려이기도 하거니와
마을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로도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자로 두었던 앙뚜가 란포체임이 증명되자
스승 우르갼의 삶도 변하고 말았다.
앙뚜의 스승이자, 집사, 보모이자 부모가 되어 그를 봉양해야 했다.

학교에 간 앙뚜가 영어책을 깜빡 놓고 왔다고 연락하자
영어를 모르는 우르갼이 앙뚜의 책을 죄다 끌어안고 학교로 향하는 모습은
그저 손주사랑 극진한 여느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앙뚜가 사춘기가 와서 불 같이 변했을때도
하염없이 넓은 품으로 그를 품고 기다려주는 모습에
말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느껴졌다.

나 또한 불같은 사춘기 소녀와 살고 있기에
사춘기 아이들의 감정변화를 바로 옆에서 감당하노라면
내 자식이지만 버거울때가 있건만..

우르갼은 자신에게 감정을 쏟아내는 앙뚜를
언제나 묵묵히 손 잡아주는 모습에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

 

 

앙뚜가 란포체임을 증명했다고 해서,
란포체로 '공인'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란포체로 공인을 받으려면 티베트 불교의 전통에 따른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덕이 높은 고승이 돌아가시기 전에 미래의 환생에 대한 암시를 남기면
제자들은 환생자를 찾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환생한 아이를 찾아, 정확한 언어로
 전생의 기억을 말해보라는 식으로 테스트를 시행한다.

란포체임이 '공인' 되면,
제자들이 전생의 사원으로 모셔간다.

앙뚜에겐 문제가 있었다.

그를 모시러 올 제자는 없었다.
 그를 모시겠다는 사원도 없었다.

앙뚜가 처한 문제는 티베트의 현실적 상황

 

티베트는 중국 정부가 무력으로 점령한 채 티베트 불교를 탄압하며
국경을 단단히 통제하고 있다.

오늘날 캄 지역은 타 지역에서 수행을 위해 모여드는
승려들을 차단하기 위해 통제와 탄압을 서슴치 않고 있다고 한다.

즉, 앙뚜의 전생의 사원이라는 캄이라는 지역에서
고승의 제자들이 앙뚜가 진짜 란포체인지 확인하러 올 수 없다는 뜻이다.

린포체이지만 공인받지 못했다면
어떤 대접을 받게 되는지...

이 책에서 접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은
마치 내가 앙뚜가 된 것 마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앙뚜처럼 전생에 몸 담았던 사원과 연락이 두절되었을 경우
티베트 이외 지역에 있는 불교 사원의 권위있는 고승으로부터
인증을 받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시팀의 사원,
하지만 앙뚜는 수행중에 추방되고 만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하나의 사원에서는 한 사람의 린포체만을 모시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앙뚜가 추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더이상 그에게 축복을 바라지도, 고개를 조아리지도 않았다.

 

 

린포체지만 공인받지 못한 앙뚜는
'가짜'가 아닐까 하는 사람들의 냉대와 의심을 받아야 했다.

마을 청년의 결혼식을 축복하러 찾아가도 보았지만,
가장 정갈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할 앙뚜의 자리는
먼지가 날리는 후미진 구석이었다.

한 때 모든 이의 추앙과 존경을 받던 앙뚜가
초라하게 웅크린 모습을 보았을 때
나 역시도 우르갼의 마음, 부모의 마음으로
가슴이 메어왔다.

노승 우르갼의 마음도 다급해졌다.
앙뚜가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앙뚜를 더욱 다그쳤다.

수행을 위한 공부를 하다가 멈출 경우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이 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주변의 지나친 기대와 존경만 받아온 앙뚜의 삶이
무거운 짐이 되어 앙뚜의 인생을 집어 삼킬것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앙뚜는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횟수가 잦아졌다.
주위 사람을 때리거나 발로 차는 등
온몸으로 감정을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란포체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망과
갑자기 변해버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밀물과 썰물처럼 거쳐갔다.

란포체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결심이 필요했다!

란포체로 태어났어도 특별한 교육과정을 밟아야 하고,
이후 장성해서는 볍회에서 설교를 하거
신도들과 교감을 나누고 불교 의식을 집행해야 했다.

앙뚜와 우르갼은 마을을 떠나 본격적인 교육을 받기로 결심했다.

흰 눈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마을, 라다크를 떠났다.
앙뚜와 우르갼은 이제 티베트로 향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티베트의 국경까지 가 보는게 목표인 그들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지만 그들은 떠났다.

 

 

매서운 바람과 추위를 인내하며
이제 바로 코앞에 티베트를 둔 상황.

우르갼과 앙뚜의 시야에 구름이 낀 거대한 설산이 가득 들어찼다.
저 산 너머가 바로 티베트 땅이었다.

마침내 앙뚜는 전생의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그곳에 가까이 왔다.

존재의 기원이자 목적지, 삶의 이유이자 업보인
티베트 캄이 저 너머에 있다.

그러나 거센 눈보라는 그칠줄을 몰랐다.
거대한 장막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마침내 앙뚜는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티베트의 캄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싶었던 희망이 절망이 되었다.

"캄의 제자들이 들을 수 있게 소라나팔을 불어보세요.
분명 린포체 님이 부르는 나팔소리가 그곳까지 전해질겁니다"

 

우르갼의 제안에 용기가 난 앙뚜...
눈보라와 안개로 한치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향해
크게 숨을 들이쉬고 소라나팔을 불었다.

 

 마침내 시킴의 사원에 도착한 앙뚜는
이제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린포체 교육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우르갼의 동행은 여기까지다.
우르갼은 다시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교육을 받는데 약 15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르갼이 자신을 위해 오랜시간, 먼 길을 왔듯이
앙뚜는 그때가 되면 자신이 우르갼을 보러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승은 안다.
오늘 그의 생에 마지막으로 앙뚜를 보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마침내 우르갼 역시 눈물을 쏟아낸다.
그의 인생을 바꾸어 버린 앙뚜와의 이별은
우르갼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르갼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언젠가 미래에 앙뚜가 훌륭한 린포체가 되어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앙뚜와 우르갼은 이미 스승과 제자라는 형식적인 관계를 초월한지 오래였다.
린포체를 증명했지만 공인을 받지 못한 앙뚜를 위해
우르갼은 그의 삶 전체를 바꾸어버렸다.

우르갼이 보여준 조건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은 부모가 자식에게
신이 인간에게 행해지는 것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우르갼이 앙뚜를 대하는 마음을
그저 린포체에 대한
'봉양'이라는 단어에 한정하기엔 더없이 넓고 깊었다.

그는 앙뚜의 부모와 같았고, 
인생의 지혜를 더해준 스승이자
앙뚜가 겪는 모든 아픔과 시련에
커다란 버팀이 되어준 가장 오랜 벗이었다.

이 책에서 앙뚜의 전생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가 진짜 린포체가 될수 있는지 어떤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뜻하지 않은 좌절과 고난을 만났을때
함께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비록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한 비극일지라도
누군가가 손 잡고 함께 해준다면...

그 아름다운 동행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누가 나의 우르갼이던가
나는 누군가의 우르갼이 될 수 있을것인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하얀 눈 밭이 그려진다.
그리고 언젠가...
가까지 않은 미래일지라도 ...
앙뚜가 저 흰 눈 밭을 걸어 우르갼을 다시 만나러 올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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