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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런
루시 크리스토퍼 지음, 강성희 옮김 / 새누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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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소녀가 방콕 공항 한가운데서 납치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공항. 그리고 환한 대낮.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런 대담무쌍한 행동을 저지른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소녀의 이름은 젬마. 영국인으로, 유능한 부모님을 두고 부유한 환경 속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하지만 그녀는 늘 가슴 속에 외로움을 품은 채 살아간다. 늘 바쁘기만 한 부모님은 소녀를 이해하기보단, 별스러운 아이 취급을 해버린다. 또래 남자애들의 애정공세에도 그닥 흥미가 없다. 그렇게 소녀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유를 그리다가 우연히 놓여진 환경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또다른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소녀를 납치한 범인, 타이
 그는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픈 기억이 있다. 그 후 고아원과 길거리를 전전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거지와 다를 바 없었던 그의 인생에 한줄기 구원의 빛이 되어주었던 이는 다름 아닌 이름 모를 작은 여자아이. 그 아이를 발견한 이후부터 남자의 인생은 오직 그녀를 데려오기 위한 날들로만 가득 채워진다. 남자는 끊임없이 소녀의 주위를 맴돈다. 그리고 소녀를 그녀가 속한 작은 세상으로부터 훔쳐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소녀를 '구했다'고 그렇게 믿는다.

 짧은 기간... 고립된 공간 속에서 그들만의 삶이 시작된다
 남자가 소녀를 납치한 곳은 다름아닌 호주의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이곳은 지나가는 자동차도 한대 없고 문명과의 교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낯선 세계이다. 도망갈 수 있는 틈이 없음을 깨닫게 된 소녀는 절규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원망이 더욱 커져간다. 하지만 그럴수록 남자의 가슴은 젖어간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소녀를 바라보며 끝내 눈물을 흘린다. 극악무도한 납치범의 눈물이라니...... 이 소설은 기존에 널려 있는 무수한 고정관념의 공식들을 과감하게 깨트리며 시시각각 독자를 숨죽이게 만든다. 눈 앞에 바로 펼쳐져 있는 듯한 끝없는 사막과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거대한 자연인 바위산. 인간의 이기심이 전혀 닿지 않은 이 미지의 공간 안에는 오직 그들, 타이와 젬마만이 존재한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세계에서 타이를 지탱해나가는 것은 젬마를 향한 끝없는 사랑 그 자체다. 젬마는 그런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걸어온 길에 공감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곤 당혹스러워 한다. 과연 젬마는 일그러진 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막에 불시착한 이들의 삶은 그 후 어떻게 될까...

 그녀의 목소리와 사막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소설
 이 소설은 젬마가 타이에게서 벗어난 후 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안녕 타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던 한 소녀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는다. 또한 그들이 잠시나마 함께 있었던 사막, 따뜻하지만 날카롭고 아름답지만 텅 비어 있는 그 공간의 이미지가 한동안 머리 속에서 맴맴 도는 기분이다. 이처럼 문자 그 자체보다도 이미지가 더욱 기억되는 소설은 실로 오랜만에 읽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젬마와 타이의 역할에는 어떤 배우가 잘 어울릴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도 꽤 즐거운 소설이다.
 타이에게 있어 젬마라는 소녀는 순수함의 결정체이다. 젬마는 그가 사랑하는 광활한 자연을 닮았다. 때묻지 않고 결코 더럽혀져서도 안 되는 그가 사랑하는 세계...... 허나 타락한 사회와 사람들은 순수한 소녀의 자유를 구속하고 소녀에게서 찬란한 꿈을 앗아가버린다. 젬마를 흠쳐낸 '범죄 행위'는 그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타당한 '구원의 행위'였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 갑작스럽게 놓여진 소녀는 집과 가족을 그리워하고 자신을 납치한 남자를 가혹한 범죄자로 취급한다. 이 때 타이는 당혹스럽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남자는,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방법을 모른다. 그에게는 자신의 사랑만이 최선일 뿐이다. 젬마를 바라보는 타이의 안타까운 사랑이 가슴 아프고, 또한 젬마의 입장에서 타이를 미워할 수밖에 없음이 슬프기도 하다.
 그렇다면 젬마는 타이를 사랑했을까? 세상 사람들은 그녀의 복잡한 감정을 단순히 스톡홀름 신드롬으로써 치부하려 하지만 젬마는 그렇게 간단히 결론지을 수 없는 감정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자신이 떠나온 사막의 풍경을 그리고... 또 타이를 그린다. 아마도 사막을 떠올리는 한 타이를 잊을 수는 없지 않을까. 
 사막의 뜨거운 열기와는 상반되지만 마찬가지로 텅 비어가고 있는 겨울 한기의 문턱에서 오랜만에 감성이 충만해지는 좋은 소설 한 편을 읽었다. 나 또한 젬마와 타이, 그리고 그들이 사랑했던 사막을 잊히지 않는 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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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강물
마광수 지음 / 책마루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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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라 하면 워낙 우리 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식의 느낌이 강해서인지, 기회가 닿는다면 그의 책을 반드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자유 성애론자, 연세대 교수직 제적, 작가이자 시인이자 교수이자 화가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활동과 더불어 그에 못지 않은 파란만장한 인생이 아마도 마광수라는 한 개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른다.

 내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파격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에 앞서 나 역시 지극히 소심한 한 여성인지라 마교수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예전에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마교수가 여성의 섹시미니 성의 상품화니 예쁘고 섹시한 여자는 어쩌니 하며 은연중에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말마따나 백발의 늙은, 그것도 본인의 외모도 딱히 상태가 좋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 나와서 여성의 외모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이 솔직히 말해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 전에도 사회 전반에 걸쳐 팬보다는 안티가 많은 사람인데, 그 토론 이후 수많은 여성들과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됐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 때야 그저 표면적인 수준으로만 상대를 이해하려 했던 철없던 시절의 얘기고,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 딱딱하고 보수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외쳤던 사람이야말로 마광수는 아니었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다른 건 물리치더라도 어쨌든 마광수라는 사람은 성을 '성' 그 자체로 보고, 사랑 또한 '사랑' 그 자체로 본다. 역설적으로 순수한 인간이다. 그러니 이 세상은 달리 표현하면 얼마나 아이러니란 말인가.

 마광수의 신작 장편소설 <세월과 강물>은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우곤 있지만 읽는 내내 소설이라는 느낌보다도 한 편의 자서전을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소설 특유의 허구성보다는 자전적인 고백을 앞세우는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마광수 바로 그 자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번민과 방황의 계절, 그가 겪었던 사랑, 성에 대한 솔직한 생각, 죽음에 대한 단상을 시종일관 담담한 어투로 풀어놓고 있다. <세월과 강물>이란 제목과 걸맞게 마치 '강물처럼 한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묘사하는 것처럼 강물을 따라 흘러간 자신의 이야기들을 고백하는 형식이다.

 그는 확실히 염세적인 사람이다. 간단히 읽을 수 있을 만큼 짧고 간결한 스토리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때로는 불편한 순간도 있다. 무엇보다 정상적 궤도를 정답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가 살아온 방식, 그가 쭉 가지고 온 가치관이 미덥지 못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마광수는 희망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희망이 얼마나 거짓된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의 인생에는 별다른 기대감이 없다. 그에게선 오직 현재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무한 냄새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 허무야말로 진실한 것이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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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피라예 - 가장 최고의 날들
자난 탄 지음, 김현수 옮김 / 라이프맵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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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피라예. 피라예는 시인 나짐의 연인이자 아내의 이름이다. 서평 이벤트에서 책을 신청할 때, 그 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제목만 보고 이끌리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제목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나는 피라예이다’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제목에서 독립적인 삶과 자유를 느꼈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해서 이 책은 절대 내 취향이 아니다. 읽고 싶어 서평 이벤트를 신청했고 고맙게도 뽑혔으며 거기다 지각 서평까지 올리는 주제지만, 그래도 입에 발린 칭찬은 할 수 없기에 감히 얘기하자면 내 기준에서는 졸작이다. 이 책은 제목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다.

 감동시키지 못한 이유, 첫 번째.

 국내에 소개된 얼마 되지 않는 낯선 터키의 소설(더구나 저자가 국민작가일 만큼 인기가 있는)은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무지하고 생소한 나 같은 독자가 이해하기엔 심하게 낯설고 공감 가지 않는다. 비슷한 3세계의 문학이었지만 나를 무척 감동시켰던 네팔 작가의 소설 <팔파사 카페>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별로 난해한 문장을 구사하지 않았음에도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내가 읽기 싫은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할 때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두 번째. 피라예는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나아가고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여자치곤 너무나도 조건이 화려하다. 이 부분이 공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솔직히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고뇌도, 권태도 있는 자들의 여유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 마디로 괴로움은 가난한 자에게만 필요한 것이다는 헛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피라예가 지향하는 삶이 대체 무엇인지 내내 헷갈린다. 쉽게 말해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탄탄대로의 길을 거부하고 보다 혁명적이고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현대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상과 부합되지 못하는 삶을 선택했고 그 결과 상처받았을 뿐이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그런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인생 속에서 자기 혼자 상처 받고 자기 나름의 복수(?)를 선택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노는 꼴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끝에 가선 철부지 공주님이 이제야 철이 들어 정신 차린 모습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진정한 자아 찾기’라고 광고를 하고 있지만 “대체 어디에서 내 자아를 찾아야 하는 거지? 이 여자는 내 삶과는 판이하게 다른데. 또 애초부터 가진 게 많아서 그냥 투정하는 걸로 밖엔 안 보이는데.”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피라예에게 몰입하는 것을 시시각각 방해하는 것이다. 피라예, 너란 여잔 대체 누구냐.

 세 번째. 작가의 문장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게 원래 터키 문학 스타일인지, 번역상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간 중간 오글거리며 너무 현실성에 뒤떨어지는 대사와 자만심(?)에 끓어 넘치는 피라예의 말투는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문제였다. 더구나 신예작가도 아닌, 터키에서 엄청난 인지도가 있는 국민작가의 필력이 고작 이 정도라니... 음...... 나와는 맞지 않는구나. 그렇게 느꼈다.

 이렇게 혹평만 늘어놓고 보니 어쩐지 나를 서평단으로 뽑아준 출판사 관계자들께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허나 어차피 서평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고 전문적인 평론 또한 아니기 때문에(나는 평론 또한 개인의견이라고 생각하지만) 혹여 이 책에 구입의사가 있었으나 이 글을 읽고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다른 분들의 서평도 찬찬히 읽어보고 결정을 내리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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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년 중국사 속의 사랑과 욕망
김문학 지음 / 지식여행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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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밤과 낮의 경계를 잘 몰랐던 시기엔 이 말 속에 에로틱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리란 것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역사 속의 수많은 황제와 그들을 유일하게 지배했던 여인들. 그리고 영웅들. 그들과 밤은 대체 무슨 관계였을까.

이 책은 야하다. 하지만 야한 만큼 솔직하다. 사람들은 영웅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려 한다. 그야말로 영웅다운 모습. 하지만 ‘영웅답다’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들도 성을 갈구하는 한낱 인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저 보통의 사람들에겐 변변찮고 천박한 것으로 여겨지는 성적 문화로 인해 끊임없이 역사는 변화해 왔다는 것을.

책 속에서는 오천년 중국 역사 속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성적욕망과 그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유교 사상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중국이 그 무엇보다도 에로틱하며 동시에 부조리한 성적 환상에 가득 찬 역사를 지녔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옛 속담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채워주기 위해 무분별하게 가해졌던 일종의 폭력인 전족 풍습과 왕 다음의 권력을 휘둘렀던 환관과 그들을 둘러싼 야사,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성을 향한 찬양어린 시선은 현대의 시각과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21세기의 현재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에 지배당하며 그들이 요구하는 미적 기준에 따르기 위해 무분별한 성형을 감행하면서까지 미모를 가꾼다. 다만, 살아가는 시대가 다를 뿐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정석대로의 중국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뜨악한 소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그러면서도 은밀한 야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반가울지도 모른다. 나는 후자 쪽이다. 나는 언제나 정석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을 캐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황제들의, 영웅들의 호색 향연이 오히려 인간적으로까지 느껴졌다. 특별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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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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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초난난>은 남녀가 서로 정답게 속삭이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도란도란’이 떠오른다. 무척 따스하고 포근하며 동시에 누군가의 품 안에 쏙 안기는 느낌.
 오가와 이토의 소설 <초초난난>은 그런 내용이다. 전체적인 틀을 보면 20대 중후반의 평범한 여주인공과 4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남주인공(물론 유부남)의 부적절한 사랑, 즉 불륜에 관련된 진부한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토록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가는 것은 역시 작가의 재주에 있다. 작가가 부리는 마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오가와 이토라는 작가는 아무래도 전통과 풍류, 그 속에서 어우러지는 멋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이 작가의 전작인 <달팽이 식당>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내게는 이 작가의 첫 작품이 되는 <초초난난>은 시종일관 일본의 아기자기한 거리 풍경과 전통 음식, 그리고 전통복식인 기모노에 대한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계절과 함께 자라나는 두 남녀의 사랑을 고요하게 그려내고 있다.
 도쿄의 변두리, 야나카 거리에서 작은 엔티크 기모노 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는 시오리는 어느 날 손님으로 찾아 온 기노시타에게 이끌린다. 아버지의 목소리와 똑 닮았지만, 아버지와는 전혀 닮지 않은 남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는 그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를 향해 이끌리는 마음을 멈출 수는 없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시오리의 가게에 들러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연령대가 있는 두 사람의 사랑 속에 어쩌면 끈끈한 성애가 등장할 만도 하건만, 400페이지를 훌쩍 뛰어 넘는 긴 이야기 속에서 보기 불편할 만큼 끈적한 장면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십대 청소년들의 순수함마저 간직한 이들의 사랑... 과연 시오리와 기노시타의 사랑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이 소설을 ‘불륜을 미화시키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찌 보면 상당히 비현실적일 만큼 시오리와 기노시타의 사랑은 전혀 파문이 일지 않는 고인 물 같다. 고인 물은 언젠가는 반드시 썩게 마련이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오리는 기노시타와 자신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론 결코 이해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굳이 ‘불륜’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의식하지 않고 그저 순수한 의미로만 바라 봤을 때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답고 예쁘다. 시오리는 기노시타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기노시타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에게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가장 소중하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그 맛을 음미하는 것. 좋아하는 거리를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것. 가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함께 가는 것. 세상 모든 연인들이 품는 소소한 꿈을 두 사람 또한 함께 꾸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오리와 기노시타의 사랑이 부적절하다고 마냥 돌을 던질 수만은 없다. 굳이 불륜이 아니더라도, 청춘남녀가 만났더라도 타락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뭐든 눈으로 먹게 해주는 즐거운 소설이었다.
 이 봄에 정말 딱,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는 <초초난난>.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아무런 사심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랑스런 마음으로 전화하고 싶다. “함께 점심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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