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피라예 - 가장 최고의 날들
자난 탄 지음, 김현수 옮김 / 라이프맵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내 이름은 피라예. 피라예는 시인 나짐의 연인이자 아내의 이름이다. 서평 이벤트에서 책을 신청할 때, 그 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제목만 보고 이끌리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제목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나는 피라예이다’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제목에서 독립적인 삶과 자유를 느꼈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해서 이 책은 절대 내 취향이 아니다. 읽고 싶어 서평 이벤트를 신청했고 고맙게도 뽑혔으며 거기다 지각 서평까지 올리는 주제지만, 그래도 입에 발린 칭찬은 할 수 없기에 감히 얘기하자면 내 기준에서는 졸작이다. 이 책은 제목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다.

 감동시키지 못한 이유, 첫 번째.

 국내에 소개된 얼마 되지 않는 낯선 터키의 소설(더구나 저자가 국민작가일 만큼 인기가 있는)은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무지하고 생소한 나 같은 독자가 이해하기엔 심하게 낯설고 공감 가지 않는다. 비슷한 3세계의 문학이었지만 나를 무척 감동시켰던 네팔 작가의 소설 <팔파사 카페>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별로 난해한 문장을 구사하지 않았음에도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내가 읽기 싫은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할 때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두 번째. 피라예는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나아가고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여자치곤 너무나도 조건이 화려하다. 이 부분이 공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솔직히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고뇌도, 권태도 있는 자들의 여유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 마디로 괴로움은 가난한 자에게만 필요한 것이다는 헛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피라예가 지향하는 삶이 대체 무엇인지 내내 헷갈린다. 쉽게 말해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탄탄대로의 길을 거부하고 보다 혁명적이고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현대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상과 부합되지 못하는 삶을 선택했고 그 결과 상처받았을 뿐이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그런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인생 속에서 자기 혼자 상처 받고 자기 나름의 복수(?)를 선택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노는 꼴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끝에 가선 철부지 공주님이 이제야 철이 들어 정신 차린 모습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진정한 자아 찾기’라고 광고를 하고 있지만 “대체 어디에서 내 자아를 찾아야 하는 거지? 이 여자는 내 삶과는 판이하게 다른데. 또 애초부터 가진 게 많아서 그냥 투정하는 걸로 밖엔 안 보이는데.”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피라예에게 몰입하는 것을 시시각각 방해하는 것이다. 피라예, 너란 여잔 대체 누구냐.

 세 번째. 작가의 문장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게 원래 터키 문학 스타일인지, 번역상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간 중간 오글거리며 너무 현실성에 뒤떨어지는 대사와 자만심(?)에 끓어 넘치는 피라예의 말투는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문제였다. 더구나 신예작가도 아닌, 터키에서 엄청난 인지도가 있는 국민작가의 필력이 고작 이 정도라니... 음...... 나와는 맞지 않는구나. 그렇게 느꼈다.

 이렇게 혹평만 늘어놓고 보니 어쩐지 나를 서평단으로 뽑아준 출판사 관계자들께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허나 어차피 서평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고 전문적인 평론 또한 아니기 때문에(나는 평론 또한 개인의견이라고 생각하지만) 혹여 이 책에 구입의사가 있었으나 이 글을 읽고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다른 분들의 서평도 찬찬히 읽어보고 결정을 내리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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