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초초난난>은 남녀가 서로 정답게 속삭이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도란도란’이 떠오른다. 무척 따스하고 포근하며 동시에 누군가의 품 안에 쏙 안기는 느낌.
 오가와 이토의 소설 <초초난난>은 그런 내용이다. 전체적인 틀을 보면 20대 중후반의 평범한 여주인공과 4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남주인공(물론 유부남)의 부적절한 사랑, 즉 불륜에 관련된 진부한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토록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가는 것은 역시 작가의 재주에 있다. 작가가 부리는 마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오가와 이토라는 작가는 아무래도 전통과 풍류, 그 속에서 어우러지는 멋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이 작가의 전작인 <달팽이 식당>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내게는 이 작가의 첫 작품이 되는 <초초난난>은 시종일관 일본의 아기자기한 거리 풍경과 전통 음식, 그리고 전통복식인 기모노에 대한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계절과 함께 자라나는 두 남녀의 사랑을 고요하게 그려내고 있다.
 도쿄의 변두리, 야나카 거리에서 작은 엔티크 기모노 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는 시오리는 어느 날 손님으로 찾아 온 기노시타에게 이끌린다. 아버지의 목소리와 똑 닮았지만, 아버지와는 전혀 닮지 않은 남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는 그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를 향해 이끌리는 마음을 멈출 수는 없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시오리의 가게에 들러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연령대가 있는 두 사람의 사랑 속에 어쩌면 끈끈한 성애가 등장할 만도 하건만, 400페이지를 훌쩍 뛰어 넘는 긴 이야기 속에서 보기 불편할 만큼 끈적한 장면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십대 청소년들의 순수함마저 간직한 이들의 사랑... 과연 시오리와 기노시타의 사랑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이 소설을 ‘불륜을 미화시키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찌 보면 상당히 비현실적일 만큼 시오리와 기노시타의 사랑은 전혀 파문이 일지 않는 고인 물 같다. 고인 물은 언젠가는 반드시 썩게 마련이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오리는 기노시타와 자신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론 결코 이해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굳이 ‘불륜’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의식하지 않고 그저 순수한 의미로만 바라 봤을 때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답고 예쁘다. 시오리는 기노시타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기노시타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에게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가장 소중하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그 맛을 음미하는 것. 좋아하는 거리를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것. 가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함께 가는 것. 세상 모든 연인들이 품는 소소한 꿈을 두 사람 또한 함께 꾸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오리와 기노시타의 사랑이 부적절하다고 마냥 돌을 던질 수만은 없다. 굳이 불륜이 아니더라도, 청춘남녀가 만났더라도 타락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뭐든 눈으로 먹게 해주는 즐거운 소설이었다.
 이 봄에 정말 딱,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는 <초초난난>.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아무런 사심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랑스런 마음으로 전화하고 싶다. “함께 점심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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