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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풍요의 시대 - AI와 인류의 미래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 김태훈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8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AI의 시작점은 오래되었지만, 대중이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시점은 2022년 11월 ChatGPT의 등장이다. 패턴 인식을 넘어 인간의 자연어를 그대로 이해하고 맥락에 맞게 답하는 모습은 놀라웠다. 할루시네이션(환각)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으나, 오늘날 AI는 이미 웬만한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갖추어 개인 맞춤형 해답을 제시한다.
범용 AI뿐만 아니라 각 산업 현장에 특화된 AI는 세상의 발전을 가속하고 있다. 의학, 농업, 제조, 서비스 등 전 영역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중이다. 곧 인류는 모든 분야에서 전례 없는 풍요를 누리는 시대로 진입할 것이다. 책 <초풍요의 시대> 역시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AI가 일구어내는 풍요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책에는 존 캘훈(John B. Calhoun)의 유명한 행동학 실험인 '유니버스 25(Universe 25)' 이야기가 소개된다. 쥐를 대상으로 먹이와 물, 쾌적한 보금자리, 질병과 천적이 없는 완벽한 유토피아를 제공한 실험이다. 4쌍(8마리)으로 시작한 쥐들은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폭발적으로 번식하여 최대 2,200마리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붕괴가 시작되었다. 사회적 유대감이 해체되고, 공격성과 무관심이 극에 달했다. 특히 다른 개체와 관계를 맺지 않고 오직 털을 다듬고 먹고 자는 일에만 몰두하는 이른바 '아름다운 자들'이 나타났다. 결국 번식은 완전히 멈췄고, 쥐들은 재생산 능력을 상실한 채 서서히 늙어가며 전원 멸종에 이르렀다. 결핍과 도전이 사라진 무제한의 풍요가 오히려 종의 붕괴를 불러왔다.

이는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에 젖어 스스로 활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걸었던 고대 로마 말기의 역사적 교훈과도 맞닿아 있다.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로마는 막대한 정복지로부터 식량과 재화, 그리고 무수한 노예 노동력을 흡수하며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모든 노동을 노예와 식민지에 의존하게 되자, 로마 시민들은 스스로 생산하고 개척하는 능력을 상실해 갔다. 국가가 무상으로 배급하는 밀가루와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검투사 경기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른바 ‘빵과 서커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생존을 위한 도전과 공동체적 책임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극단적인 나태와 쾌락주의,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이 들어찼다. 로마 시민들은 더 이상 군복무나 정치 참여, 출산과 양육 같은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결국 물질적으로 가장 화려하고 풍요로웠던 시기에 로마의 사회적 응집력과 회복 탄력성은 밑바닥부터 무너져 내렸고, 외부의 침략 앞에서 허무하게 종말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가올 AI의 초풍요 앞에서 유니버스 25의 쥐나 로마의 시민들처럼 무기력한 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가? 책 <초풍요의 시대>는 이에 대해 명확하면서도 낙관적인 해답을 던진다. 기술이 가져올 풍요는 인류를 나태의 늪에 빠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단순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해 ‘진정한 가치 창출과 자아실현’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약대라는 점이다.
책이 설득력 있게 역설하듯, 에너지는 무한에 가까워지고, 의료와 교육의 한계비용은 0을 향해 수렴하며, 물리적 결핍은 기술 혁신으로 빠르게 해결되고 있다. 이제 인간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외우고 반복 작업을 해내는가'가 아니라, AI라는 강력한 지능 증폭기를 활용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문제를 정의할 것인가', 그리고 '타인과 어떻게 연대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결핍이 사라진 자리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인간 고유의 호기심과 주체적인 사유, 그리고 공동체적 목적의식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과 AI가 만들어낼 ‘초풍요’는 인간에게서 결핍과 노동의 굴레를 벗겨줄 축복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삶의 목적과 도전을 앗아가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풍요의 시대 속에서 끝없는 편리함과 안락함에만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기술이 열어준 압도적인 풍요를 딛고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조할 것인지는 오롯이 인간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