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술의 세계사 - 리더가 탐한 붉은 권력,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 와인 역사
명욱 지음 / 포르체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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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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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독서 루틴을 이어가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하고 있다. 이번에 집어 든 <왕과 술의 세계사>는 제목부터 내 시선을 끌었다. 보통 '와인'이라고 하면 우아한 레스토랑이나 로맨틱한 분위기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책은 와인을 '왕'과 '세계사'라는 키워드와 연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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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와인은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인류 역사와 함께한 강력한 서사의 매개체라는 것을 배웠다. 와인에 부여된 서사는 전쟁과 파국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바빌론의 왕자 벨사살이 성전의 성배로 와인을 마시며 오만을 떨다 페르시아에게 허무하게 함락당한 일화는, 정복의 도구였던 와인이 결국 제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독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고대 로마에서 옥타비아누스는 경쟁자 안토니우스를 향해 "이집트의 독배에 취해 로마인의 영혼을 팔아넘긴 자"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웠다. 이를 통해 나는 권력자들이 대중의 심리를 조종하기 위해 사물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프레임을 짜는지, 역사적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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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와서는 어떨까? 과거 페르시아 제국에서 와인을 다루는 '술 관원(느헤미야 등)'은 왕의 최측근으로서 사람과 사람을 매칭해 평화를 끌어내는 훌륭한 리더였다. 당시 페르시아는 유대인을 해방시킨 구원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란(페르시아)과 이스라엘은 서로를 증오하며, 과거 평화의 와인이 담겼던 잔에 독설과 미사일을 채우고 있다. 은인이 원수가 된 현대 중동의 지정학적 비극을 보며, 와인을 둘러싼 역사적 서사가 오늘날 이권 다툼과 전쟁의 현실 속에서는 씁쓸하게 변모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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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반가웠던 깨달음 중 하나는 과거의 궁금증이 풀렸다는 것이다. 예전에 넷플릭스에서 고대 로마와 그리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화면 속에서는 왕이나 귀족뿐만 아니라, 평범한 서민과 병사들까지 물 대신 항상 와인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저 시대 사람들은 매일 술에 취해 살았나?' 하고 의아했었는데, 이 책이 명쾌한 해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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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민들에게 와인은 취향이 아니라 생존 필수품이었다고 한다. 당시 오염에 취약했던 우물물이나 납 수도관 특유의 비릿함을 가려주는 훌륭한 보존제이자 마스킹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을 끓일 땔감조차 사기 힘들었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1g당 7kcal의 열량을 내는 알코올은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버티게 해주는 즉각적인 에너지원이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은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를 통해 시민들에게 와인을 무상으로 배급하며 제국의 노동력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속 그들이 마셨던 와인은 낭만이 아니라, 치열한 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생존의 재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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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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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술의 세계사>의 프롤로그에는 와인 한 병이 2026년 뉴욕 경매에서 무려 약 12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이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발효된 포도즙 한 병일 뿐인데, 왜 누군가는 그 한 병에 그렇게 큰 가치를 부여할까? 프롤로그에서 생긴 의문은 내용을 읽어가며 실타래를 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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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밀은 바로 시간과 서사에 있었다. 12억 원에 낙찰된 와인은 1945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에 생상된 와인으로 '나치에 대한 승리'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또한 혹독한 기후 탓에 평소 수천 병 생산되던 와인이 단 600병만 생산되는 극단적 희소성을 띠게 되었다. 와인은 오직 그해, 그 시간에만 허락된 '단 한 번의 기록'이다. 누군가 마실 때마다 세상에 남은 수량은 줄어들 뿐, 결코 다시 늘어나거나 그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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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읽으며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디지털, AI 시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바이브 코딩이나 생성형 AI를 통해 클릭 몇 번이면 글, 그림, 심지어 영상까지 무한하게 복제되고 뚝딱 만들어지는 시대다. 완벽하고 효율적인 산출물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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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이 로마네 콩티가 보여준 대체 불가능한 시간과 서사라고 생각한다. AI가 아무리 훌륭한 글을 써낸다 해도, 내가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내 삶의 경험과 고민을 녹여내어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가는 서평의 과정과 시간은 복제할 수 없는 것이다. 효율성과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일수록 자신만의 고유한 땀방울이 밴 경험, 켜켜이 쌓아 올린 꾸준한 루틴과 실패와 극복의 이야기가 담긴 서사는 희소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매일의 독서와 기록을 통해, 복제될 수 없는 나만의 빈티지를 묵묵히 숙성시켜 나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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