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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 동화 ㅣ 클래식 리이매진드
야코프 그림.빌헬름 그림 지음, 얀 르장드르 그림, 민지현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4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동화는 파스텔톤의 평화로운 풍경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마무리로 기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원전으로 마주한 <그림 형제 동화>는 빨간 피가 낭자하고, 비명이 가득한 날것 그대로의 서늘한 동화였다. 신데렐라 속 황금 구두에 발을 맞추려 제 발가락을 잘라내는 언니들과 백설공주 속 불에 달궈진 쇠 구두를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왕비의 최후는 다소 당혹함을 느끼게 했다.

그림 형제는 창작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들은 독일 전역의 민중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기록한 관찰자이자 인류학자라고 한다. 그림 형제 동화에 실린 이야기는 대부분 지은이가 불분명한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라는 점이다. 즉, 공동체의 집단적 무의식이 빚어낸 산물임이다. 굶주림과 약탈, 신분제의 억압과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대에 이 동화들은 부모가 자식에게 전하는 생존 지침서와 같은 것이다. 다소 잔혹한 결말은 아이들에게 겁주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의 악의가 얼마나 집요하며 실수가 초래하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뼈에 새기듯 가르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교육 수단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먼 독일에서 수집된 이야기들은 한국의 전래동화와도 맥락상 비슷한 점들이 많다.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겪는 수난과 조력자의 등장은 '콩쥐팥쥐'를 떠올리게 했고, 빨간 모자를 삼키려던 '늑대'는 어머니로 변장해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쫓던 '호랑이'와 정말 비슷했다. 지리적으로도 멀고, 문화적으로도 다른 두 나라 사이에 이토록 유사한 이야기가 발견되는 점은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소망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무엇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시기와 질투, 탐욕과 약탈이라는 위협을 경계했었고, 고통 끝에 정의가 실현된다는 결말을 꿈꿨다. 어쩌면 권선징악이란 인종과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정식 속 깊이 각인된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다른 관점의 증거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본 동화들은 대부분 디즈니 애니였고, 원전을 본 건 처음이다. 그리고 오래전에 본 것들이라 기억도 희미한데, <그림 형제 동화>속 백설공주를 보며 현실적인 답답함을 느꼈다. 3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자기가 가장 신뢰하고 걱정하는 난쟁이들이 경고를 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속아넘어간 모습은 순진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참 답답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되면 그런 상황을 속아 넘어갈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도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고, 세월의 풍파를 겪었기에 보이스피싱 따위에 걸리겠느냐고 와이프에게 큰소리쳤었는데, 최근 검찰이라고 속이며 시도했던 보이스 피싱에 얽힌 뼈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우리 모두가 가진 인간적 본성의 약점을 공략 당하면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마치며,
<그림 형제 동화>는 단순히 어린 시절의 추억을 파괴하는 잔혹극만은 아니었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어두운 본성을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어둠 속에서도 끝내 지켜내야 할 인간다움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인류가 수천 년간 이어온 '더 나은 삶'과 '정의'에 대한 갈망은 결코 변하지 않는 가치라는 점, 그리고 세상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냉철함이 필요함을 동화를 통해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